"자기부담금 보험사가 편취"vs"先처리 없애면 고객만 피해"

■ 뜨거운 감자 된 자동차보험 '자기부담금'
車 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
"미리 낸 자기부담금은 고객 몫
자차 보험사가 공제해선 안돼"
손보사 "車 아닌 화재보험 판례
제도 무력화땐 처리기간 길어져"
年 2,000억 자기부담금 공방 가열


쌍방과실 자동차 사고가 발생할 경우 과실 비율이 확정되기 전 각 보험사가 피보험 차량의 수리비를 전부 부담하고 추후 정해진 과실 비율에 따라 수리비용을 대물보험사에 청구하는 ‘선처리제도’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보험처리 기간 최소화로 고객 편의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것인데 최근 자동차 사고 관련 인플루언서로 활약 중인 한문철 변호사가 선처리제도로 보험사들이 편취하는 자기부담금이 연간 2,000억원에 달한다며 손보사들이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 변호사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지난달부터 총 21차례에 걸쳐 “연간 110만대의 자동차들이 자차보험 처리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 자기부담금인 20만원씩 보험사가 가져갔다고 보면 고객들이 돌려받아야 할 돈은 연간 2,000억원, 소멸시효 전 3년간 6,000억원에 달한다”며 “가입자가 요구하면 보험사는 무조건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 주장의 근거는 지난 2015년 대법원 판례다. 화재보험 일부보험(전체 담보가치의 일부만 가입)과 관련된 당시 판결에서 대법원은 ‘미보상손해액(자차에서는 자기부담금)’을 가입자의 손해액으로 보고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회사의 대위권보다 우선한다고 판시했다. 이를 인용해 한 변호사는 손보사가 선처리한 자차 비용을 대물보험사에 청구할 권리(대위권)보다 보험가입자가 대물보험사로부터 자기부담금을 청구할 권리(구상권)가 우선하는데도 그동안 손보사들은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할 자기부담금을 편취했다고 주장했다. 총 수리비 100만원, 과실비율 5대5, 자기부담금 20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현재 자차보험사 A는 자기부담금 20만원을 공제한 후 차주 B에게 80만원을 지급하고 과실분(50%)에 해당하는 50만원을 대물보험사 C에 청구하는데 한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C가 A에게 지급해야 할 전체 수리비는 30만원이며 20만원은 고객의 몫이 된다.


그러나 손보사들과 금융감독원은 한 변호사의 주장이 사고예방과 모럴해저드 제어 등을 위해 도입한 자기부담금 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인데다 한 변호사가 인용한 대법원 판례는 자기부담금제도 자체가 없는 화재보험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를 자동차보험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은 자기부담특약으로 4~5% 수준의 보험료 할인 혜택을 받는다. 이때 자기부담금 비율은 20% 혹은 30% 중 정할 수 있고 자차 사고 발생 시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50만원까지 자기부담금을 부담하게 된다. 한 변호사의 주장대로 보험사들이 계약자들에게 자기부담금을 돌려줘야 한다면 보험료 할인 혜택은 물론 자기부담특약 제도 운영을 통해 전체 소비자들이 누렸던 보험료 혜택도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보상처리 방식에 따라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선처리가 불가피한 쌍방과실 사고에 대해서만 자기부담금을 돌려준다면 선처리가 필요 없는 일반과실사고(일방적 과실 사고, 단독 사고 등)의 경우만 자기부담금을 부담하게 된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전체 자동차 사고의 80%는 일반과실 사고에 해당하며 나머지 20%의 쌍방과실 사고 중에서도 과실 비율 분쟁이 장기화돼 선처리가 불가피한 사고는 15% 정도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15%에 해당하는 소비자들이 자기부담금을 돌려받고 나머지 85%의 소비자들에게 그 부담을 나눠 지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며 “자기부담금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해당 방송에 대해서는 어떤 대응도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제는 관련 민원에 시달리는 손보사들이다. 구독자 수만 56만여명에 달하는 한 변호사의 주장에 따라 상당수 구독자들이 보험사와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에는 ‘자부담금을 떼먹는 보험사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일부 손보사는 늘어나는 민원에 못 이겨 일부 민원인에게 자기부담금을 부당 환급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관련 민원이 늘어나고 법적 분쟁까지 현실화하면 보험사들로서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운영했던 선처리 제도를 없애고 과실 비율이 확정되면 대물처리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며 “선처리 제도가 사라지면 사고처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는데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일부 보험사들은 법적 분쟁에 대비해 자기부담금 관련 약관 내용을 명확하게 손질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또 업계 공동으로 로펌을 선정해 법률 검토를 의뢰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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