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인정하지만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최장수 총리 아베는 왜 궁지에 몰렸나

'사학 스캔들', '벚꽃 모임 논란' 등 위기 넘겼지만
코로나19로 국가적 재난 대응 능력 부족 드러나
부정 여론이 긍정 앞서...조기 퇴진설까지 나와
경제 둔화 우려해 비상사태 선언 늦췄다는 비난에
지지율 의식한 무책임한 태도까지 도마위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7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굳건한 지지를 바탕으로 7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18~19일 일본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아베 정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53%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답변(39%)보다 훨씬 높았다.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고 답한 이들은 41%로,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42%)보다 적었다. 지난달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지지 여론은 2% 포인트 하락했고, 비판 여론은 4% 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다.

일본 도쿄의 한 거리에서 17일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출근하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위기 상황에서 40%대를 유지하는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언뜻 보면 크게 추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아베 총리가 ‘역대급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 내에선 ‘아베 조기 퇴진설’까지 퍼지는 상황이다. ‘사학 스캔들’, ‘국가 행사 사유화 논란’ 등 각종 위기를 타파해 온 그가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충격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014년 4월 12일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와 도쿄 신주쿠교엔에서 열린 ‘벚꽃을 보는 모임’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쿄=블룸버그

우선,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진 ‘벚꽃을 보는 모임’ 사유화 논란에 이어 이번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연달아 직격탄을 맞으며 아베 총리의 위기감이 증폭됐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정부 공식 행사인 벚꽃 모임에 자신의 지역구 주민과 후원회원을 대거 공적인 행사를 사유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그가 벚꽃 모임에 자신의 지지자를 초청한 것에 대해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67%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25%)을 크게 웃돌았다. 또 아베 총리 측근이 벚꽃 모임 초청자 명단을 파기한 것으로 알려지며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0% 초반대로 주저앉았다. 그보다 앞서 2018년에는 2015~2016년 국유지를 사학법인 ‘모리토모 학원’에 헐값에 넘긴 사안과 관련한 문서가 ‘사학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며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잇단 논란에도 탄탄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그러나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됐던 이전의 각종 스캔들과 달리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아베 총리의 총체적인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의 부실한 초기 대응 능력이 코로나19 사태를 키우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는 비판에서다. 24일 기준으로 일본에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탑승자(712명)를 포함해 1만3,141명을 기록했다. 전날 하루 만에 29명이 사망하며 누적 사망자도 341명으로 늘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올림픽위원회 본부 앞에 세워진 오륜기 조형물 /EPA연합뉴스

아베 총리의 무모한 고집이 사태를 확산시켰다는 비판도 거세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2월부터 일본의 코로나19 검사 건수가 다른 국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 19일 기준 일본의 진단 건수는 총 11만 건으로 한국(56만 건)의 20% 수준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에선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최를 앞두고 환자 수를 줄이기 위해 아베 정부가 의도적으로 소극적인 검사를 해왔다는 의혹이 쏟아졌다. 그동안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일본의 경기 회복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며 지지를 확보했던 아베 총리가 경기 악화를 우려해 ‘긴급사태’ 선언을 미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7일에서야 떠밀리듯 긴급사태를 선언했지만 이미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한 이후였다.


일본 도쿄의 한 우체국 직원이 16일 주민들에게 배포될 마스크를 기자들 앞에서 들어 보이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뒤늦은 대응에 혼란은 가중됐다. 일본 정부가 배포한 천 마스크에서 먼지나 이물질이 붙어있는 등 결함이 잇따라 발견되며 결국 정부에서 다시 회수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의 ‘불량 마스크’는 국제사회에서도 ‘아베노마스크’로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는 굴욕을 맛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아베 총리가 코로나19 대응에서 보인 무책임한 태도가 국민들의 실망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마이니치신문은 22일 아베 총리가 “왜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최근 그의 정책 방향이 지나치게 지지율을 의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당초 경제대책의 일환으로 저소득층에게 30만엔(약 344만원)씩 지급하려던 정책을 ‘전 국민에 10만엔(113만원) 지급’으로 급선회한 것은 어디까지나 급락하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셈법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마이니치는 또 아베 총리가 현금 지급과 관련해 발생한 혼란에 대해서 사과하면서도 “지금까지 할 일은 모두 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점도 지적했다. 즉, 아베 총리는 “책임을 인정하지만, 실제로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고 마이니치는 평가했다. 앞서 그는 지난 7일 긴급사태를 발령하면서 코로나19와 관련해 “내가 책임질 성격의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사흘 만에 “모든 정치적 판단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수습한 바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총리 관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책 회의를 마치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하는 것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가 7년 넘게 총리로 재직하는 가운데 유권자들 사이에 체념 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아베 총리를 대신할 인물도 마땅치 않다는 인식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다수 주요 국가에서 지도자의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베 총리가 절대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2만5,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탈리아를 비롯해 영국·프랑스·한국 등 국가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지도자의 지지율이 급격히 올랐다. 반면 아베 총리는 23개월 만에 비판여론이 지지여론을 앞서는 등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코로나19 공포에서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최장수 총리’로서의 위상이 더욱 추락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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