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쇼크’에 준하는 타격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수출 버팀목인 반도체가 14.9%나 감소한 것을 비롯해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국가별로도 긍정적인 신호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상황에 따라 장기간 이어진 무역수지 흑자 기록 역시 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난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은 217억2,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9%(79억9,000만달러)나 급감했습니다. 일 평균 수출은 15억달러로 같은 기간 대비 18.6% 줄었습니다. 이달 1~20일 조업일수(14.5일)가 지난해 같은 기간(16.5일) 대비 2일이 적었음을 고려해도 감소 폭이 큽니다.
주요 품목별, 수출국별 실적을 뜯어봐도 부진합니다.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석유제품은 53.5%나 줄었고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은 각각 28.5%, 49.8% 감소했습니다. 한국 수출 ‘대표 선수’인 반도체는 이달 초순(1~10일)만 해도 감소 폭이 1.5%에 그쳤으나 이번에 14.9%로 확대됐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홈오피스 구축용 반도체 수요가 일부 늘었지만,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모바일 기기 수요 등이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국가별 수출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국(-17%), 미국(-17.5%), 유럽연합(-32.6%), 베트남(-39.5%), 일본(-20%), 홍콩(-27.0%), 중동(-10.3%) 등 주요 시장에서 일제히 실적이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리는 모습입니다. 이에 따라 이달 1~20일 수출은 217억2,900만달러에 그쳤습니다. 이 추세라면 4월 수출액은 300억달러를 간신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4월 수출이 400억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2010년(393억달러) 금융위기 이후 처음입니다.
수출 전선이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것은 감염병 대유행으로 우리 기업들의 공장 가동 중단과 세계적인 수요 절벽이 맞물리고 있어서입니다. 해외에 있는 국내 기업의 생산기지도 일부에서는 조업 재개가 이뤄지고 있으나 셧다운 연장을 결정한 곳도 적지 않죠. 삼성전자는 이번 주 가동을 재개할 예정이었던 멕시코 티후아나 TV 공장을 현지 정부 방침에 따라 다음 달 3일까지 가동 중단하기로 했고, LG전자의 멕시코 레이노사 TV 공장도 26일까지 셧다운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코로나 19발(發) ‘수출 쇼크’가 본격화하는 모습입니다. 앞서 이달 들어 10일까지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18.6%나 줄어든 122억달러로 집계됐는데,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와 올해 초 14개월 연속 뒷걸음질치며 장기부진에 빠졌던 수출이 회복될 틈도 없이 곧장 마이너스로 곤두박질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집니다. 실제 코로나19로 글로벌 무역환경이 불투명한데다 각국의 이동제한 조치,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떨어진 초저유가까지 올해 수출은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죠.
특히 수출에 이어 수입감소까지 겹치며 지난 98개월 동안 이어진 무역흑자 흐름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실제 이달 1~20일 수입액은 251억8,400만달러로 전년동기(309억3,600만달러)보다 18.6% 하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 적자는 34억5,5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2억1,200만달러)보다 3배가량 확대됐죠. 2018년 기준 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는 한국 산업생태계는 외국에서 원자재를 구매한 뒤 상품을 만들어 재판매하는 특성을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수출이 감소하면 수입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입니다.
21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컨테이너터미널과 국제자동차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와 철강제품이 늘어서 있다.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26.9% 급감하는 등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평택=오승현기자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여파가 당분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만큼 최소한 상반기까지는 수출 감소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윈은 “해외 선진국들의 경우 제품 수요가 3월 중순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며 “올해 1·4분기까지는 기존에 받아 놓은 주문도 있고 재고도 남아 실적 악화를 막아냈는데 이달 들어 본격화한 코로나19의 영향이 5~6월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세계 경제가 사실상 ‘올스톱’되면서 수출 전선은 악화일로에 빠질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회복 시점이 언제쯤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것조차 무의미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우려했습니다.
수출이 이렇게 휘청이면서 올해 경제성장률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올 1·4분기 경제성장률이 11년3개월 만에 가장 낮은 -1.4%로 급락했습니다.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이 지난 3월부터 본격화해 4월 수출이 급감한 것을 고려하면 2·4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코로나 19가 한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