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정치] 다급한 文정부, 김정은·트럼프 뺀 '나홀로' 대북정책 속도전

DJ-김정일 선언 기념행사, 동해선 건설 등
총선 압승에 대북사업부터 바로 추진 준비
"평양병원 짓는데 몇억 달러라도 다 지원"
합의이행 '제로'·1년 이상 교착상태에 절박
美눈치도 안볼듯... 김정은 잠행 등은 변수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얼싸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선언문에는 비핵화와 종전 선언 등의 내용을 담았으나 이후 실질적으로 이행된 건 거의 없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4·15 총선 압승을 기반으로 남북교류협력에 다시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임기 초와는 달리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잠행을 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한국 정부 혼자라도 추진할 수 있는 정책들부터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현재 남북이 합의한 교류사업 중 이행된 게 사실상 전무한 만큼 현 정부가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내에 단 한 가지라도 성과를 내기 위해 선제적 조치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총선 압승에 곧바로 남북교류사업부터 강행

통일부는 지난 24일 제3차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을 토대로 수립한 ‘2020년 남북관계발전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중단된 남북교류를 다시 재개하겠다는 구상이다. 세부적으로는 △북핵문제 해결 및 항구적 평화 정착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현 등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통일부는 우선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남북 공동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첫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채택됐다. 남북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1~2008년 공동 행사를 개최했지만 2009년 이후에는 공동 행사를 열지 않았다.

또 이산가족 상봉 20주년을 맞아 대면·비대면 상봉도 추진하고 대북 개별관광 지원 기구도 만들 예정이다. 신종 감염병과 말라리아, 결핵 등 시급한 감염병 분야부터 남북 보건 협력도 추진한다.

통일부는 앞서 지난 23일 김연철 장관 주재로 제313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사업’을 남북교류협력 사업으로 인정하고 추진 방안을 확정하기도 했다. 남북협력사업으로 지정되면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가능해져 조기에 착공할 수 있게 된다.

동해북부선 건설 사업은 2000년부터 추진돼 왔던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의 일환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은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등을 연결하고 현대화하는 데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이행된 것은 없다. 정부는 이와 함께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4·27 판문점 선언의 비준 동의안을 새로 출범하는 21대 국회와 협력해 다시 추진키로 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연합뉴스

“평양병원 짓는 데 몇억 달러라도 써야”... 남은 임기 美눈치 안볼듯

정부가 이렇게 남북교류 사업에 갑자기 박차를 가하는 것은 지난해 2월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북미 관계가 1년 이상 소강 상태만 이어가자 더 이상 미국의 눈치만 볼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지난 15일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자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자신감이 더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총선 직후인 20일 갑자기 특별 대담을 마련하고 ‘보건협력부터 강화하라’며 훈수를 뒀다. 특히 이 전 장관은 “우리가 지난 역사에서 미국과 협의해 뭘 받아내서 된 적이 없다”며 “정부가 국민들이 총선에서 180석 만들어 준 걸 (바탕으로) 잘 안 되는 건 과감하게 뚫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론을 추스르려고 하면 안 되고 반발이 있어도 끌고 나가려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담대하게 평양종합병원 짓는데 들어갈 의료기기·의약품 전부 우리가 다 지원해주겠다고 하고 남북협력기금 1조2,000억원 등 몇억 달러라도 써서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 역시 “정부하고 민간이 협력하면 평양종합병원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며 “종합병원 (지원) 같은 건 남측에서도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종합병원 건설은 김정은이 다른 사업을 모두 제쳐 두고 진행하는 올해 최대 숙원 사업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직접 참석해 높은 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목표 완공일은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인 10월10일 전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이를 반영한 듯 지난 12일 보건 부문 투자를 지난해보다 7.4% 늘리기로 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협상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으니 6·15 남북공동선언이 20주년을 맞는 6월15일 전까지는 (보건협력으로 시작해)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코로나19와 김정은 잠행, 트럼프의 의지 결여 등은 걸림돌

다만 코로나19로 이전보다 북한과 직접 접촉하기 여의치 않다는 점과 국제사회 제재라는 벽이 여전하다는 점은 교류사업 현실화에 심각한 걸림돌로 지적됐다. 게다가 김정은이 최근 돌연 잠행에 들어가면서 남북교류 창구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뒤집는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남북미 관계 개선에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 점도 부담 요소로 꼽힌다. 아무런 우호 환경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만 실효성 없이 이런저런 시도를 할 경우 자칫 문재인 정부만의 ‘나홀로’ 교류사업처럼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인데다 방위비 협상도 틀어진 상황에서 국민들의 재신임을 받은 만큼 미국 대선 전까지 미국 눈치를 보지 않고 여러 남북 교류 방안을 강행할 수 있다”며 “9·15 평양공동선언이 아직 이행된 게 전혀 없어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