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일본이 제작한 ‘녹둔도’ 실측지도인 ‘일로국경부근지도(日露國境附近之圖)’. /사진제공=해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가 함경북도 두만강 하구에 위치한 ‘녹둔도(鹿屯島)’ 실측 근대지도를 26일 처음으로 공개했다.
녹둔도는 이순신이 1586년부터 2년간 종4품에 해당하는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 겸 녹둔도 둔전관(屯田官)으로 근무하면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아내고 녹둔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역사적 장소이다.
박준형 해군사관학교박문관 관장은 “이 지도를 충무공 이순신 탄신 제475주년을 앞두고 공개하게 됐다”며 “지도 이름은 ‘일로국경부근지도(日露國境附近之圖)’로 1911년 9월 일제가 실측해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도는 가로 79.5㎝, 세로 122.5㎝의 크기로 반투명 투사지에 채색돼 있으며 보관상태도 양호하다. 오른쪽 아래에 방위표와 ‘2만분의 1’ 축척이 표기돼 있고, 그 아래에 범례가 표로 정리됐다. 범례 왼쪽에는 ‘명치사십사년 구월 실측(明治四十四年 九月 實測)’이라고 적혀 있어 이 지도가 1911년 9월에 실측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박 관장은 일제 강점기 한반도 연구를 위해 평소 일본이 제작한 근대 한반도 지도를 수집해 왔다. 이 지도를 지난 3월 초 일본에서 입수한 박 관장은 “러시아와 접경 지역인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 지역은 일제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며 “그런 점에서 당시 한반도에 주둔했던 일제의 한국주차군사령부(韓國駐箚軍司令部)가 이 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로국경부근지도(日露國境附近之圖)’ 범례. /사진제공=해군사관학교
일로국경부근지도는 일반 지형도와 달리 군사적 목적에 의해 제작된 특수지도이다. 이 지도는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제작한 1926년 ‘5만분의 1’ 축척 지도보다 시기적으로 15년 빨리 제작됐고, 축척도 ‘2만분의 1’이라는 점에서 녹둔도를 더욱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2018년부터 충무공 이순신 북방유적의 남·북·러 공동발굴조사를 주도하고 있는 백종오 한국교통대학교박물관 관장은 “일로국경부근지도는 이순신이 활약했던 녹둔도 전투(1587년)의 주 무대였던 녹둔도 토성의 위치를 고증하는데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녹둔도 토성의 위치는 15세기 ‘동국여지승람’에 처음 기록으로 나타나며 이후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관북지’, ‘경흥부읍지’ 등 각종 문헌에 기록돼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위치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번에 확보한 일로국경부근지도가 앞으로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러시아 군사역사학회가 공동 발굴하는 녹둔도 토성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유용한 사료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백 교수는 “이 지도를 처음 봤을 때 나라가 힘이 없으면 지도 한 장 만들지 못한다는 통한을 느꼈다”며 “지도에 표기된 두만강이 아닌 ‘도문강(圖們江)’이라는 지명에 나타나듯이 우리 손으로 우리 주권을 지키지 못하면 지도 한 장에도 타국의 주장이 반영돼 결국 자신의 역사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 지도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호국정신과 주권수호의 중요성이 우리 국군 장병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며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부연했다.
박 관장은 “이순신은 1587년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아내고 녹둔도 전투에서 승리했다”며 “이후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전란을 미리 대비했고,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로국경부근지도에 ‘성장(城場)’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것은 ‘녹둔도 토성(土城)’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향후 연구를 통해 녹둔도에서 이 충무공 관련 유적 발굴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해군사관학교는 앞으로 학술대회 등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녹둔도 전투 관련 연구를 더욱 발전시키면서 충무공 관련 연구에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