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업체의 공장에서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경제DB
삼성전자(005930)가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 투입량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데이터 단위인 ‘기가비트(Gb)’ 기준 반도체 출하 물량은 40% 가까이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초격차’ 행보에 ‘반도체 굴기’를 목표로 D램과 낸드플래시 투자에 힘을 주고 있는 중국 업체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침투가 TV 등 가전제품용 외에는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웨이퍼 구입 비용으로 1조8,960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반도체용 웨이퍼 구입 용으로 지출한 비용이 1조6,642억원이지만 1년새 웨이퍼 가격이 12%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난 1년간 웨이퍼 투입량에 변화가 없다. 반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생산한 반도체 물량은 데이터로 환산시 9,881억Gb로 전년의 7,110억Gb 대비 39% 늘었다. 삼성전자가 웨이퍼 추가 투입이 필수인 공장 증설 보다는 공정전환을 통해 공급량 증대 및 수익 향상을 꾀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역대 최대인 27조3,456억원을 반도체 부문에 투자한 이후 2018년(23조7,196억원)과 2019년(22조5,649억원)에 투자 금액을 전년 대비 줄였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대폭 늘었다. 올해도 공정 전환 등을 중심으로 반도체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라 투자금액 축소 기조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원가 경쟁력은 높아진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미세 공정은 나날이 속도가 붙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의 경우 1세대 10나노급(1x) 공정을 2세대(1y)나 3세대(1z)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D램 생산공정이 업그레이드 될 수록 웨이퍼 한장에서 만들어내는 반도체 칩 수가 20~30%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극자외선( EUV) 공정을 적용해 4세대 10나노급(1a) D램을 양산할 경우 1x 공정 대비 웨이퍼 1개당 2배 많은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다. 같은 용량의 D램 이라도 미세 공정 단계가 높을 수록 판매단가도 높아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세대(1xx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하기도 했다. 6세대 낸드플래시 제품은 5세대(9x단) 제품 대비 칩 크기가 작아 웨이퍼당 생산성이 20% 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낸드플래시의 비트그로스(비트 단위당 반도체 생산 증가율) 또한 30%이내가 될 것으로 전망해 데이터 기준 반도체 출하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업체의 ‘반도체 굴기’는 이 같은 삼성전자의 압도적 원가 경쟁력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YMTC가 128단 낸드 플래시 제품을 연내 양산할 것이라 밝혔지만 이 또한 삼성전자의 6세대 제품과 기술격차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의 6세대 제품은 100단이 넘는 셀을 식각 공정으로 한번에 뚫는 ‘채널 홀 에칭’ 기술을 적용한 반면 YMTC는 이 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64단 낸드 위에 64단 낸드를 쌓는 방식을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9x단 이상 3차원(3D) 낸드를 식각 공정 한번으로 양산 가능한 곳은 현재 기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YMTC가 128단 낸드를 양산한다 하더라도 안정성이 중요한 서버나 하이엔드 경쟁이 치열한 모바일 제품에는 탑재되기 힘들 전망이다.
중국 업체의 반도체 생산 수율은 삼성전자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알려져 원가 경쟁력도 크게 낮다. 반도체가 8개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만큼 이 중 하나라도 차질이 발생할 경우 수율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중국 업체는 여전히 각 공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2위 업체이자 업계 최고 수준의 수율을 자랑하는 SK하이닉스(000660)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10%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중국 업체는 반도체를 양산할때마다 손실이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재용(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6월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김기남(왼쪽 세번째) 부회장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경영진들과 이동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일 인사에서 김기남 DS부문장 부회장, 김현석 CE부문장 사장, 고동진 IM부문장 사장 등 대표이사 3명을 유임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중국 업체의 자금도 턱없이 모자라다. 중국은 지난 2015년부터 향후 10년간 1조위안(170조원)을 반도체 육성에 투자하기로 했지만 본격 투자 시 수년 내에 고갈될 수 밖에 없는 규모다. 2000년대 초반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1위에 오른 삼성전자가 공정 고도화와 램프업 등을 위해 최근 3년간 73조원을 투입한 반면 중국 업체는 공정 고도화는 커녕 기본 장비 도입과 클린룸 건설 등 기초작업에만 수십조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칭화유니그룹이 메모리 반도체 굴기에 힘주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지원 없이는 매년 수 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미국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을 규제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도 중국 반도체 굴기를 어렵게 할 전망이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