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5A04 자구안이 급한 대한항공
정부가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이 별도로 가동되기 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FSC)에 총 2조9,000억원을 수혈하기로 하면서 생존 자체가 불투명했던 항공사들에 대한 정부 지원 방안이 일단락됐다. 이제는 자금을 수혈한 대형 항공사들의 자구노력과 매각작업 등 자체 생존 작업에 항공산업의 사활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통보를 받아든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당장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난립 상태였던 LCC 업계는 구조조정의 격랑에 빠져들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대한항공에 대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1조2,000억원 지원 방안을 끝으로 기간산업안정기금 가동 전 1차적인 항공업 지원이 마무리됐다. 21일 산은과 수은이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을 한도 대출 방식으로 지원하기로 한 것을 포함해 2조9,000억원을 두 회사에 긴급 투입한 것이다. 양대 국적 FSC 지원 방안이 우선 확정되면서 당장 생존을 위한 공은 다시 이들 회사로 넘어갔다는 평가다.
눈앞의 타오르는 불길을 끈 두 회사는 각각 추진 중인 자구안과 매각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대한항공은 추진 중인 약 1조원 규모 유상증자와 자산매각 작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유동성 위기 해결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객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국제선 운항이 사실상 멈춰선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1조2,000억원은 기껏해야 올 상반기를 넘길 수 있는 돈이다. 대한항공이 하반기에 갚아야 할 빚만 3조원 이상이다. 대한항공은 이번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유상증자가 한층 힘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 정부의 1조2,000억원 투입이 유동성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에는 부족하지만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반기 추가 지원이 본격화하면 회사 정상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계산이다. 남은 건 주주들의 몫이다. 주주들과 실권을 인수할 증권사들의 참여가 관건이다. 대한항공은 동시에 서울 송현동 부지, 왕산레저개발 등 유휴자산 매각 작업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돈 되는’ 사업부 매각설도 제기되지만 코로나19 이후의 사업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 작업이 여전히 안갯속에 빠져 있는 아시아나항공은 정부 지원으로 인수 작업이 본격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HDC현산은 당초 이달 말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대금을 납부하기로 했지만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자 머뭇거리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HDC현산이 인수 자체를 재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이 경우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훨씬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한다. 산은의 이번 아시아나항공 지원으로 공은 HDC현산으로 다시 넘어갔다. 아시아나항공이 발등에 불을 끄면 인수의 불확실성이 한층 걷히는 만큼 인수작업을 미룰 명분도 사실상 옅어진다. 다만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HDC현산의 고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문제는 LCC다. 사실상 ‘대마불사’ 논리를 적용한 양대 국적항공사와 달리 산은과 수은은 “LCC 업계에는 추가 지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올 2월 발표한 3,000억원가량의 유동성 지원 방안이 전부다. 그나마도 두 달 넘게 지난 현재까지 집행 금액은 1,260억원으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LCC들은 사실상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대형항공사보다 곳간이 부족한 LCC의 체력은 지난해부터 일본 불매운동과 이에 따른 과당경쟁이 누적되면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결정타가 됐다. 항공기 운항이 대폭 줄면서 돈줄이 막혔고 규모가 작아 외부자금 수혈도 여의치 않다. 그나마 정부로부터 3,000억원 외에 별도로 약 2,000억원을 지원받아 이스타항공 인수를 마무리하기로 한 제주항공이 비교적 나은 상황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면 운휴에 들어간 이스타항공의 김포국제공항 발권카운터가 텅비어있다./이호재기자
항공업계에서는 LCC 업계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LCC 업계는 과당경쟁 상태라는 평가다. 국내 LCC는 현재 운항하는 곳이 7개,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 등 면허를 받고 준비 중인 곳까지 9개다. 땅이 넓고 인구가 3억2,0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LCC도 9개다. 1억2,000만명이 넘는 인구의 일본은 8개, 중국은 6개다.
LCC 업계에서는 “허가를 면밀한 검토 없이 내주고 난립을 방치한 정부가 지원에는 인색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노재팬·코로나19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하지만 LCC 업계의 과당경쟁은 예고된 일이었다”며 “이제 와서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의 자세만 고수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대한항공 인천 기내식 센터에서 한 관계자가 텅빈 밀카트 앞을 지나가고 있다./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