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다수 보험사는 지난달 16일 ‘빅컷(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 단행 후 지난해 말 수립한 사업계획을 모두 백지화하고 재검토에 착수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대다수 보험사는 상저하고의 실적 반등을 예상했다. 추가 금리 인하가 이뤄지더라도 주식시장 강세 및 예정이율 인하 효과 등이 반영되면서 상반기 중 바닥을 다지고 하반기에는 예년 수준의 실적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한 보수적인 사업계획마저도 지금으로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사업계획 수립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누구도 코로나19 사태와 연내 제로금리 진입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금리에 취약한 생명보험사들의 위기의식은 상당하다. 저금리 장기화로 생보사 당기순이익은 2년 연속 줄었고 지난해에는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순이익이 각각 39%, 86% 줄어든 데 이어 텔레마케팅 중심의 저비용 구조로 승승장구하던 라이나생명마저 11년 만에 순이익이 뒷걸음질쳤고 ABL생명을 비롯한 5개 생보사가 지난해 적자를 냈다. 모두 제로금리에 진입하기도 전의 상황이다.
신용등급 강등 압력도 커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지난 14일 한화생명의 보험지급능력(IFS) 평가 등급을 종전 ‘A+’에서 ‘A’로, 장기발행자등급(IDR)을 ‘A’에서 ‘A-’로 각각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또 한화생명의 하이브리드채권 등급도 ‘A-’에서 ‘BBB+’로 낮췄다. 이에 앞서 무디스도 한화생명을 비롯한 국내 생보산업에 대한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수정했다. 최소 1년간 저금리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업황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보험사들은 바이백제도·계약이전제도 등 업계가 수년 전부터 건의해온 저금리 대응방안을 총동원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바이백제도는 해지환급금에 일정한 프리미엄을 더해 고객에게 지급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제도다. 벨기에의 일부 생보사들은 바이백제도를 통해 고금리 종신 보증계약에 대해 10~25%의 프리미엄을 지급하며 계약을 해지했고 이를 통해 약 70억유로의 부채를 절감했다. 연 5% 이상 확정형 금리 계약 비중이 40% 이상인 국내 생보사들로서는 도입이 절실하다.
실효성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지만 계약이전제도 완화도 보험사들의 숙원과제로 꼽힌다. 보험계약의 전부 혹은 일부를 타 회사로 이전하는 것으로 대만 알리안츠생명이 대만 중국생명에 연이율 4% 이상의 고금리 계약 7만8,000건을 이전해 부채부담을 약 47%(일반계정 기준) 줄인 사례가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만 해도 보험사들은 증시안정펀드에 출자자로 참여할 만한 체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지금은 지원 주체가 아니라 지원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며 “업계의 숙원사업들을 하루빨리 제도화해 돌파구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