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 여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소요예산 중 최소한 2조1,000억원가량을 지방비로 충당하기로 하면서 지방정부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중구난방으로 독자적인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는데다 정부 차원의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에 애를 먹고 있어서다.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국비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방정부들은 지방비 20% 매칭을 위해 세출 구조조정을 하거나 빚을 낼 수밖에 없어 주요 현안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26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에 따르면 당정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확대 지급에 따라 추가로 소요되는 예산 4조6,000억원을 전액 국비로 충당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당정은 당초 새로 추가되는 ‘소득 상위 30%’를 위한 재원의 경우 3조6,000억원은 국채 발행으로, 나머지 1조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지방비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방침 변경에도 ‘소득 하위 70%’ 기준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 비율을 8대2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2차 추가경정예산 9조7,000억원 중 2조1,000억원은 지방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김경수 경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등 광역단체장들은 “중앙정부에서 100% 부담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난관련기금 약 1조4,000억원을 포함해 3조원 이상의 재원을 확보, 자체적으로 긴급생활비를 지급하거나 예정한 상황에서 추가로 부담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전체 도민에게 각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는 경기도는 1조3,642억원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재난 관련 예산은 물론 지역개발기금까지 끌어다 쓴 상태다.
특히 20%를 매칭하는 타 시도와 달리 30%를 부담해야 하는 서울시는 자체 긴급생활비 3,271억원에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생존자금 5,740억원에 더해 5,200억원가량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금을 지방채 발행 없이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으나 정부 재난지원금 재원까지 충당하려면 주요 사업 추진을 포기해야 한다. 재정 여력이 그나마 나은 서울시가 마른 수건을 짜내야 하는 상황에서 재정자립도가 20~30%에 불과한 다른 시도의 재정 압박은 불 보듯 뻔하다.
중앙·지방정부 간 혼선으로 중복지원은 물론 광역·기초자치단체 간 형평성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앙·지방정부가 중구난방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역 주민들이 더 혜택을 받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앞으로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재정 소요가 많은 만큼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도는 국비로 지급하되 지역별로 형평성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지자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경쟁에 현장 잡음 잇따라
정부 차원의 긴급재난지원금 소요예산만 해도 지방정부의 부담이 2조1,000억원에 이르는 마당에 지방자치단체가 중구난방으로 자체적인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서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일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잇따른 시민들의 민원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또 예산 부족에 각 지자체의 주요 현안사업에 차질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옆 동네는 주는데 우리는 왜 안 주나” 항의 빗발=지난 7일 경기 구리시는 구리시민 전체에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9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구리시 재정자립도는 35.6%로 경기도 내 하위권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구리시는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경기도 내 31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도 재정자립도 하위권에 속하는 탓에 산적한 현안에 투입해야 하는 예산만으로도 재정상황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리시청 홈페이지 민원 게시판에 ‘다음 선거에 당선되기 싫으냐’ ‘왜 구리만 가만히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등의 민원이 쏟아지자 구리시는 전격적인 지급을 결정했다. 주민들의 집단민원에 지자체가 손을 들면서 정책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백년대계를 준비해야 할 정책이 여론에 흔들리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이다.
구리시의 결정에 인접한 남양주시는 진퇴양난에 놓였다. 경기도 지자체 중 유일하게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지 못한 남양주시는 재정자립도가 34.7%로 구리시보다 더 재정이 열악하다. 조광한 남양주시장까지 나서 연일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지만 남양주시 홈페이지에는 ‘남양주만 역차별하는 시장은 물러나라’며 불만 게시글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상황의 심각성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지자체에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면서 민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놓고 우왕좌왕하면서 재정상황이 열악한 지자체는 여론에 떠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지역별 형평성 논란에다 주요 사업 차질도=천차만별인 지자체별 지원금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대구시의 가구당 최대 지원금은 190만원이지만 경기 포천시는 280만원이다. 인천시민은 소득 하위 70% 기준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4인 가구 기준 최대 100만원이다. 반면 이웃한 경기 부천시는 같은 조건에서 최대 160만원을 받는다.
서울시도 중위소득 100% 이하인 소상공인의 경우 소상공인 재난기본소득 140만원, 중위소득 100% 이하에 지급하는 재난긴급생활비 40만원에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합쳐 280만원을 받게 된다. 서울시는 총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재원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마련하고 부족하면 진행 중인 다른 사업을 최소하거나 연기할 방침이다.
이처럼 지자체들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예산을 끌어쓰면서 주요 현안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올해 역점사업으로 장애인공공재활병원 설립을 내걸고 연구용역에만 9,5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코로나19로 예산 지출이 늘어 1조원에 달하는 세출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체 도민에게 각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는 경기도는 재원 마련을 위해 극저신용대출 사업비를 기존의 1,0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삭감했다.
◇때아닌 ‘카드깡 논란’ 등 잡음 속출=지자체들이 선심성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서면서 지급 시점을 놓고도 일선 현장의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 말 서울시에서 경기 하남시로 이사한 시민은 서울시와 경기도 모두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서울시는 신청일까지 서울 거주 조건을 달았고 하남시는 지난달 23일 이전 경기도민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해서다.
일선 지자체에서 선불카드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때아닌 ‘카드깡’ 논란도 일고 있다. 모든 지자체가 긴급재난지원금 취지를 살려 대형마트 등을 제외한 지역 소상공인 업체로 사용처를 제한하자 인터넷 사이트에서 선불카드를 거래하는 얌체족이 늘고 있어서다. 카드깡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징역 3년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지만 지자체가 이를 단속하려면 또다시 행정력을 투입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자체별 재정자립도와 주민들의 빈곤 수준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포퓰리즘식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지자체에 만연한 상황”이라며 “늦은 감이 있지만 중앙정부에서 사전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려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자체까지 선심성 정책을 내놓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