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무기 개발을 주관해온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근무했던 고위급 연구원 수십명이 기밀 연구자료를 대량 유출한 혐의가 포착돼 군과 국정원·경찰이 합동수사에 착수한 만큼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만일 중국 등 해외로 유출됐다면 국가 안보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밀유출 사건을 합동조사 중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와 국가정보원·경찰은 현재 60여명이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유출한 기밀은 현재까지 68만건으로 파악됐고 대상자와 피해 규모는 수사 상황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ADD를 떠나면서 기밀을 빼간 이들은 대부분 대학이나 유명 방산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국방연구기관의 기밀유출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동안 국내 기관과 기업들의 첨단기술 관련 기밀 유출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유출된 기술과 기밀은 국내 기업들 간 경쟁에만 사용된 게 아니며 상당수가 외국, 특히 중국으로 많이 빠져나갔다. 수사기관은 아직 해외로 기밀이 유출된 정황은 없는 것으로 보지만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ADD는 ‘국방력 강화와 자주국방 완수에 기여한다’는 목표로 지난 1970년 대전에 설립돼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ADD는 군복·군화를 비롯해 총기류와 탱크·전차·미사일·헬기·전투기 등을 개발해왔다. 최근에는 최첨단무기 체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우리 군이 사용해온 국산무기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ADD 같은 기관에서 연구하는 국방 관련 기술들은 안보와도 직결된다. ADD에서 새어나간 기밀이 현재 파악된 것만 68만건임을 감안하면 이미 어느 정도는 중국 등 외국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중국으로의 국방기술 유출은 곧 북한으로도 전해질 수 있어 안보 관련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 방산전문가는 “이번 ADD의 기밀유출은 사상 최대로 아는데 국내 무기체계 개발의 핵심 연구소에서 이처럼 많은 기밀이 유출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ADD뿐 아니라 다른 연구기관과 방산업체들에서도 유사한 기밀유출 사례가 없는지 등을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ADD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이는 기밀들은 대부분 첨단기술로 알려졌다. 기밀유출에 연루된 일부 전직 연구원들은 퇴직 이후 연구를 위해 자료를 출력하고 저장했다고 해명하지만 사실 여부는 수사를 통해 좀 더 살펴봐야 한다.
국방기술에는 단순히 군사적 무기체계의 노하우만 있는 게 아니다. 카메라 등 촬영과 통신기술은 물론 넓게는 의학·약학 등의 기술도 녹아 있다. 이 때문에 ADD에서 빠져나간 기밀들이 궁극적으로 국내 다른 산업의 경쟁력까지 저하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사·산업기술 및 기밀보호 관련 전문가인 강원선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한국테러방지시스템 부사장)는 “방산기업과 군 관련 연구소는 단순히 산업적인 기술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업무를 다루기 때문에 보안이 곧 생명”이라며 “기관 스스로 기밀유출을 차단하는 철저한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원들도 높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기밀유출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ADD의 기밀유출 사건은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군 내 사고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최근 해군에서는 민간인이 기지를 무단출입해도 한동안 모르고 있었는가 하면 육군에서는 병사가 간부인 대위를 폭행하는 등 사건사고가 빈발해 군 기강 해이가 지적됐다. 이번 ADD 사건도 군 기강 해이가 불러온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