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게으름 경제’는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의 성장산업을 설명하는 데 자주 언급된 용어다. 일명 ‘란런 경제’로 불리는 게으름 경제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늘어나 바뀐 경제현상을 뜻한다. 각종 배달 서비스를 시작으로 대행·위탁 등을 포함해 일상생활부터 교육 서비스까지 관련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게으름 경제는 정보기술(IT) 서비스 활용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한정돼 있었고, 가까운 미래에 그 잠재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가장 선도하는 기업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비슷한 아이템의 기업에까지 관심을 두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게으름 경제가 이름처럼 느리지 않고 빠르게 우리 삶의 모습으로 침투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후 의도하지 않게 우리의 생활은 게을러졌다. 대외활동을 중단하다 보니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의 패턴이 반복되고 느슨해지는 변화에 적응하게 됐다. 직장과 학교에서의 바쁜 일상에 익숙하고 적응했던 삶의 패턴이 조금 느려져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게으름 경제를 대비하며 성장해온 산업은 어떻게 될까. 기존의 ‘부지런 경제’의 가치(value)를 조금씩 빼앗을 가능성이 크다.
성장산업의 중심축인 IT산업을 생각해보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과거의 경제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했다. 근로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가계의 소비와 투자활동이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끄는 데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IT산업의 기술혁신이 노동력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IT산업은 과거 전통산업의 가치를 흡수하기 시작해 프리미엄을 부여받는 대표적인 성장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공장 자동화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하거나 빅데이터를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금융산업은 어떠한가. 선진국을 포함해 금융산업은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자본시장이 성숙될수록 금융산업의 수익성과 안정성은 더욱 탄탄해지는데 해당 산업의 주가수익률은 부진한 경우가 많다. 항상 저평가돼 있는 산업 중 금융이 꼽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왜 금융산업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는 것일까. IT산업의 기술발전과 함께 수많은 핀테크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고 이들이 제공하는 편의성으로 인해 금융산업의 가치를 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금융상품이 나올 경우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부지런함’보다 플랫폼이 잘 구축된 기업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게으름’이 올바른 선택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패러다임은 이처럼 삶의 패턴이 바뀐 상황에 누가 빨리 적응하고 선점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성장산업에 대한 투자는 ‘새로움’이 가져다줄 신선함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식상함’이 가져다주는 불편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성장산업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