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6주째 마이너스…팔아도 남는게 없다

■에쓰오일 1분기 1조 적자
가동률 조정·정기보수 돌입
하반기 회복세 기대하지만
수요없어 녹록지 않을듯


에쓰오일이 1·4분기 사상 최악의 실적을 발표하며 정유업계가 우려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피해가 현실화됐다. 전 세계에서 석유제품 수요가 가파르게 감소한데다 국제유가 폭락으로 재고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에쓰오일은 27일 1·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1조73억원의 영업손실 중 원유 재고 관련 손실이 7,21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에쓰오일이 창사 이래 최대 적자를 낸 것에는 국제유가 급락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사들이 원유를 들여와 제품으로 팔기까지는 2~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비싼 가격에 산 원유를 싼 가격에 팔아야 하는 셈이다.


2014년 4·4분기에도 국제유가가 급락했지만 원유 재고 평가로 인한 손실은 이번이 당시의 2배를 웃돌았다. 에쓰오일에 따르면 2014년 4·4분기 재고평가 손실은 3,100억원 수준이었다. 100~110달러였던 유가가 3개월 만에 60~70달러로 떨어졌던 2014년보다 하락 폭이 가팔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60~70달러를 기록했던 두바이유의 4월 평균 가격은 3분의 1 수준인 20.9달러에 불과하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까지 급감하며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 3월 셋째주부터 4월 넷째주까지 6주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정유사의 핵심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은 지난해 9월 한때 10.1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수요가 급감하며 11월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손익분기점(BEP)인 4~5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유·휘발유 등 연료용 석유제품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제품인 휘발유가 원재료인 두바이유보다 낮은 가격에 팔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3월 셋째주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평균 29.01달러였지만 휘발유 가격은 그보다 낮은 27.98달러를 기록했다. 앞서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코로나19 확산 탓에 1·4분기 세계 석유 수요가 지난해 대비 일평균 380만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의 감소 폭이다.

국내 정유 4사는 에쓰오일을 시작으로 다음달까지 1·4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다음달 6일 실적을 발표하는 SK이노베이션(096770)이 매출 10조9,372억원, 영업손실 7,500억원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에쓰오일이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쇼크를 기록한 만큼 SK이노베이션의 실적 전망치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현대오일뱅크와 GS(078930)칼텍스도 각각 4,000억원대와 5,000억원대의 적자가 예상된다.

에쓰오일 측은 이날 “정유사들의 대규모 가동률 조정 및 정기보수 일정과 더불어 글로벌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정제마진은 낮은 수준에서 점진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제마진 악화로 정유사들은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 역시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5~2016년에는 저유가와 함께 수요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실적이 좋아질 수 있었다”며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올해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국면에서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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