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가 플랫폼 기술에 빠졌다. 플랫폼 기술은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과는 달리 환자의 복용 편의성을 높이거나 효능을 높이는 등 약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기술이다. 원천 기술 하나만 보유해도 여러 회사에 기술 수출이 가능해 규모가 작은 국내 바이오벤처가 성과를 내기도 비교적 쉽다.
2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알테오젠, 레고켐바이오, 한미약품 등이 플랫폼 기술로 1조원이 넘는 기술수출을 이뤄냈다.
알테오젠은 지난해 12월 글로벌 상위 10대 제약사에 정맥주사 제형을 피하주사 제형으로 바꾸는 ‘ALT-B4’ 기술을 1조 6,000억원에 기술수출했다. 정맥주사 제형의 약물은 병원을 직접 찾아 의사를 만난 뒤 정맥을 찾아가며 4~5시간 주사해야 하지만 피하주사 제형은 배에다 바늘을 찔러 5분 내 약물을 주입할 수 있다.
보통 신약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하면 그 물질에 대한 권리 자체가 넘어가 추가 수출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플랫폼 기술은 정반대다. 수출한 기술이 상업화에 성공하면 그 자체가 레퍼런스가 돼 더 많은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 할 수 있다.
박순제 알테오젠 대표이사는 “피부에 있는 히알루론산을 살짝 분해해 피부 안쪽으로 약물이 들어가도록 만든다”며 “이번 기술수출로 알테오젠의 기술력을 증명한 만큼 연내 3~4건 정도 추가 기술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협상 자체가 2개월 내 끝날 정도로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됐다”며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글로벌 제약사에서 우리 기술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레고켐바이오 역시 플랫폼 기술 하나로 3건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기술이전 계약금만 모두 1조원에 달한다. 레고켐바이오가 보유한 약물항체결합기술인 ‘콘쥬올’은 항체와 약물을 이어 원하는 부위에 전달한 뒤, 다시 두 결합을 끊어 약의 기능이 작동하도록 한다. 쉽게 설명하면 ‘유도 미사일’인 셈인데, 항체가 신체 내 항원에 다다르면 약물이 그 항원에 작용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5년 중국 포순제약에 208억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일본 다케다제약에 4,548억원, 올해 영국 익수다테라퓨틱스에 4,963억원 규모의 기술수출을 진행했다.
앞서 한미약품은 약물이 분해되는 반감기를 줄여 약물의 지속 시간을 늘이는 ‘랩스커버리’ 기술을 여러 제약사에 기술수출했다. 매주 맞아야 하는 주사를 한 달에 한 번만 맞으면 되는 만큼 환자 입장에서 훨씬 편리하다. 한미약품이 이 플랫폼 기술과 관련해 출원한 특허만 1,500개에 달하며 이 기술이 적용된 백혈병치료제 ‘롤론티스’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업계에서는 플랫폼기술이 신약개발의 기반 기술이 될 뿐 아니라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어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블록버스터 신약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신라젠·헬릭스미스가 임상 3상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했던 만큼 투자자들이 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며 “최근 잇따른 성과가 나타나는 만큼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