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만에 분해되는 종이컵, 시간이 지나면 흙이 되는 등산복, 종이로 만든 맥주병, 분해되는 포장지 등등.’
전 세계가 ‘생분해’에 빠져 있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나 섬유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는 생분해 소재를 찾기 위해 전 세계가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친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여기에 부합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될 운명에 처할 수 있다. 기업들이 미래 생존을 위해 ‘에코경영’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림의 친환경 종이컵 네오포레CUP. /사진제공=무림
국내에서는 최근 제지 업체 무림이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무림은 친환경 종이컵 ‘네오포레CUP’을 내놓았는데 4주가 지나면 거의 분해되고 10주 차에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폴리에틸렌(PE)으로 비닐코팅을 해 100년간 썩지 않는 일반 종이컵과는 차원이 다른 제품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 최고의 시험인증기관(TUV AUSTRIA)도 ‘생분해성인증(OK compost)’을 내주며 ‘엄지 척’을 했다. 생분해성인증은 생활폐기물 혹은 산업폐기물이 환경 독성을 띠지 않고 일정 기간 내에 생분해되는지를 시험·확인하는 국제적 환경인증인데, 이를 따내기 위한 전 세계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는 연간 3억톤에 이른다. 지구촌 인구 무게와 맞먹는 규모다. 플라스틱과 같은 썩지 않는 폐기물은 ‘작은 입자로 분해→하수관 유입→해양생물 섭취’의 경로를 따라 결국에는 사람의 체내에 축적되는 등 악순환된다. 이런 문제의식이 확산되다 보니 과거 환경단체나 주장하던 것들을 기업들이 앞장서서 솔루션을 찾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재계의 한 임원은 “에코경영은 기업들의 미래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 필수가 됐다”며 “환경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던 최고경영자(CEO)들도 생각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K2가 내놓은 ‘블루트리(blue tree)’. 이 의류는 버려진 페트병과 폐그물에서 추출한 리사이클 소재와 화학제 없는 염색 기술, 생분해원사 등을 사용했다. /사진제공=K2
◇등산복·장난감 소재도 모두 생분해…3년 내 61억달러 시장 형성=이렇다 보니 글로벌 시장도 넓어지고 있다. 재계의 한 임원은 “기업들이 생분해 기술 선점에 나서면서 종이컵이나 에코백·종이빨대 등에서 필름이나 원사·바이오페트·의류 등으로 제품 범위가 끝없이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AI), 사이버 보안, 스마트 헬스케어 등과 함께 생분해와 같은 친환경 신소재 사업을 미래 신산업으로 꼽고 있다. 특히 자연분해가 가능한 생분해 기술은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커지면서 시장도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무역연구원은 글로벌 생분해 시장이 지난 2018년 30억달러에서 오는 2023년 61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의류 등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업종에서는 생분해 제품이 새로운 카테고리로 뜨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K2는 최근 페트병(PET)이나 폐그물 등에서 추출한 리사이클 재생 소재, 생분해원사 등을 활용한 친환경 의류인 ‘블루트리’를 선보였다. K2는 지난해 전체 제품 물량의 3% 수준이던 친환경 제품을 올해 20%로 확대할 계획이다. 노스페이스도 천연 울 소재를 적용한 ‘클래식 울 스니커즈’로 고객 잡기에 나섰다. 완구·가구 시장에서도 친환경 흐름이 거세다. 레고는 연내에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 레고 제품을 출시하기로 했고 가구 브랜드 이케아는 네슬레와 함께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을 개발해 가구에 적용할 계획이다. SKC가 만드는 친환경 생분해필름도 식품포장재에 이어 아이스팩·의류·도서포장재용 등으로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신소재에 대한 수요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국제적인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출도 못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도 이런 추세에 맞춰 친환경 소재 개발 기업에 대해 연구비용·세제 지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SKC가 만든 친환경 생분해필름을 포장재로 사용한 스타벅스 제품. /사진제공=SKC
◇“에코경영 기업에 R&D 투자지원 아끼지 말아야”=최근 영국의 바이오학술지 ‘카보하이드레이트 폴리머스’에는 신소재 플라스틱 개발 소식이 실렸다. 바다에서 30일 만에 분해되는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본의 오사카대와 일본 최대 옥수수녹말 제조업체인 일본식품화공의 공동연구 끝에 나왔다. 일회용 플라스틱이 분해되는 데 500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난제를 해결할 새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더구나 이런 신소재 플라스틱은 기존 제품보다 내구성도 두 배나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식품 업체 관계자는 “산학연 프로젝트 등을 통해 생분해 시장을 선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저렴한 제조단가에 공정도 단순한 신소재가 하나둘 실용화되면 기존 식품포장재 시장도 대폭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침구 업체 이브자리도 2003년부터 수면환경연구소를 통해 콜라겐섬유 등 친환경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콜라겐섬유는 나무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 성분에 어류에서 추출한 단백질 성분을 결합해 만들기 때문에 자연에서 생분해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생분해되는 콜라겐섬유로 만들어진 ‘러버블’ 등의 제품을 찾는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소비자 인식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경제 설문에 참여한 한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친환경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경영철학을 현실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정부도 기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