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기부' 분위기 만든다지만…'억지 기부' 변질 우려

미신청 10%+기부10%+稅 10%
與 "하위 70% 지급과 재정 비슷"
기업들도 정치권 눈치 볼 수밖에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서 긴급 재난지원금에 대한 자발적 수령 거부, 나아가 공직사회를 시작으로 기부를 유도하려는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 가운데 국회 입법이 완료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직들이 앞장서 ‘자발적 기부’ 분위기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처럼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는 계획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기부운동 자체가 사실상의 준조세로 다가올 수 있기에 자칫 ‘강제 기부’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여권에 따르면 당정청은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긴급 재난지원금 기부에 적극 동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핵심관계자는 “고위공직자·공기업, 그리고 공무원들부터 시작할 수 있다”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퍼져나간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임금이 줄어들지 않은 기업들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홍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긴급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기부와 관련한 논의는 ‘국회의 몫’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으나 자발적 기부를 통해 국민들의 위기극복 의지가 결집되는 효과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내가 100만원을 받았는데 50만원만 (기부)하고 싶다 또는 100만원을 받았는데 나는 더 얹혀서 200만원을 하고 싶다는 것도 가능한, 이런 것을 다 열어두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입법 기술적인 측면”이라고 밝혔다. 재난지원금 100만원에서 한 발짝 나아간 ‘플러스알파’ 기부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회에서 지원금이 통과되는 대로 국민이 신속하고 편리하게 지급받도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주기 바란다”며 “굳이 신청이 필요없는 가구에 대해서는 신청 절차를 생략하고 신청이 필요한 경우에도 온라인 신청 등 비대면 신청 방법을 적극 활용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한 바 있다. 청와대 차원에서 재난지원금 기부와 관련한 적극적 움직임이 나올 경우 지난해 ‘다주택자 주택 매각 지시’ 당시처럼 공직사회 전체로 기부 바람이 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정청의 이러한 움직임에는 범국민적 기부운동이 확산할 경우 애초 정부안대로 ‘소득 하위 70%’에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재정을 쓰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재난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는 이들, 기부, 그리고 재난지원금을 통한 소비에서 파생되는 부가세 등을 합치면 추가 30% 재정 부담을 일정 부분 상쇄 가능하다는 셈법이다. 여권 관계자는 “귀찮아서 신청하지 않는 사람들 10%, 기부하는 이들 10%, 그리고 부가세 10%를 합치면 하위 70%에 지급하는 재원과 거의 비슷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여권이 추진하려는 이 같은 캠페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우선 중앙정부·지방의회 권력에 이어 여당이 총선 의석 180석 확보로 입법 권력까지 잡은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서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채 발행에 대한 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고 궁여지책이 바로 기부금이 된 셈”이라며 “문제는 대기업조차도 3·4분기가 되면 굉장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준조세 형식의 기부금 압박이 바람직하냐는 문제제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행정부와 의회 모든 권력을 가진 막강한 정부인데 기업 입장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일반 국민은 누가 얼마를 내는지 알 수 없지만 기업은 다르기 때문에 기부 캠페인 자체가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국가가 강제력을 무리하게 발동한 건 아니기에 관제라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전 세계적 재난이기에 분위기를 그렇게 끌고 가는 것뿐”이라며 “국가가 시민사회를 강제한다고 보는 보수적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 캠페인이겠지만 사회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시각차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정연·윤홍우·김혜린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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