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과 광복군 활동을 했던 유찬희·유기석·유기문 선생 삼부자를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884년 8월 황해도에서 출생한 유찬희 선생은 배재학당에서 공부했다. 슬하에 딸 신덕·신영과 아들 기석·기문을 뒀다.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가 해산되자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평안도와 황해도·함경도 등에서 교육·계몽운동을 했다. 1919년 3월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체로서 간도지역 항일민족운동단체인 대한독립기성총회를 조직했다.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상무총회를 설립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한 자금을 모금했다. 1923년 12월 중국에서 독립을 위한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동성노농공사의 간사로 활동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1930년 귀국해 별세했다.
장남 유기석 선생은 1907년 1월 출생해 1930년 4월 상하이에서 유자명 등과 아나키즘(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을 결성하고 의열투쟁을 촉구했다. 같은 해 6월 천진에서 대한독립당주비회 기관지 ‘한국의 혈’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안창호의 대독립당 결성 운동을 후원했다.
유기석은 1938년 김구와 협력해 일본 군함 폭침과 상하이지역 일본 공사의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1943년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한 그는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됐고, 1944~1945년 난징에서 광복군 모집활동을 했다. 광복 후 중국 남통학원, 강소사범학원 등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으며 1980년 별세했다.
차남 유기문은 1910년 출생해 1931년 11월 무장투쟁 단체이자 남화한인청년연맹의 의열투쟁 조직인 흑색공포단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35년 5월 흑색공포단원 엄순봉, 이규호와 함께 친일 상하이 거류민회장 이용로와 친일파 옥과빈을 처단했다. 이후 선생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는 삼부자의 공훈을 기리어 유찬희에게는 2010년 건국훈장 독립장, 유기석에게는 2008년 건국훈장 독립장, 유기문에게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