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지고 미뤄지는 분양 일정에 …한숨 터지는 레미콘 업체

건설한파에 장마 前 성수기실종
"공공물량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
IMF 수준 비용절감에 "눈앞 캄캄"

레미콘 업체들이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는 건설경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공사 부족으로 한창 바삐 움직여야할 레미콘 차량들이 멈춰서 있는 모습. /서울경제DB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6월까지가 성수기인데도 분위기조차 못 느낄 정도에요. 분양도 줄줄이 밀리고 있고…”

한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요즘 시장 상황에 대해 “대형사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혈안이고, 중소형사는 공공물량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건설 경기 악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으로 힘들었는데 총선 이후에도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푸념이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분양일정도 건설사들의 눈치 보기로 자꾸 뒤로 밀리는 실정”이라며 “서울 등 수도권만 봐도 노후 주택이나 경전철 공사 등이 있는 서남권만 꾸준히 공사가 있고 동남·동북권은 갑갑할 만큼 일감이 없다”고 말했다.

주택 관련 지표만 봐도 건설경기에 찬바람이 여전함을 감지할 수 있다. 지난 2017년 65만호에 달했던 전국 주택 인허가 건수는 2018년 55만호, 2019년 48만호 등으로 급감했다. 공사 감소가 불가피하다.


불황에 내성이 약한 중소형사는 공공물량만 쳐다보고 있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공원 연석, 배수로 농수로 공사, 도로 포장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발주하는 소규모 공사라도 따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5월 금어기 시작에 따른 바닷모래 등 골재 수급 일부 차질 가능성도 불안 요인이다. 특히 불량 레미콘 이슈 부각도 레미콘 업체의 남모를 속 앓이를 부추기고 있다.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건설사들이 레미콘 품질을 강조하면서도 납품단가는 이전보다 낮추라고 강요하는 탓이다. 통상 레미콘은 시멘트, 모래·자갈 등 골재, 혼화제, 물이 들어가는데, 시멘트 대체제로는 철 가루 석탄재 등이 쓰인다.

그런데 한 영세 레미콘업체가 시멘트 정량을 줄여 사달이 빚어졌고 여론 악화에 직면한 건설사들이 레미콘 업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건설사들이 품질 재고와 양립하기 어려운 가격 하락을 무리하게 밀어 부치고 있는 점이다. 한 중형 업체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요구하는 주문자 배합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납품 가격을 낮추라는 압박에 마진이 갈수록 박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대형사들이 사업 다각화에 바짝 고삐를 죄는 것도 레미콘 업계의 경영 악화와 무관치 않다. 실제 유진기업은 건자재유통 사업부문의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홈인테리어 전문매장인 ‘홈데이’, 건축자재공구원스톱 쇼핑센터인 ‘에이스하드웨어’ 등이 그런 예로 꼽힌다.

코로나 사태 완화로 지연됐던 공사가 본궤도를 찾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목. 업계의 한 실무자는 “레미콘 업계에서는 공기 지연이 곧 비용”이라며 “그간 건설 현장에 인부 부족에 사회적 거리 두기 여파로 공사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못했었는데 이런 문제가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레미콘 업계가 최근 몇 년 새 혹독한 인력 구조조정,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한번 정리된 만큼 힘들어도 당장 나가 떨어지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현재로서는 불황의 탈출구가 잘 안보일 만큼 힘들다는 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