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시청 홈페이지에 항의합시다”… 떼 쓰면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지난달 28일 남양주시청에서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남양주시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의 민원과 항의에 떠밀려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서면서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정부가 지급하는 재난지원금만 해도 지자체 부담액이 2조1,000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재정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예산 부족으로 각 지자체의 주요 현안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결국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옆 동네는 주는데 우리는 왜 안 주나” 항의 빗발=지난달 7일 경기 구리시는 구리시민 전체에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9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구리시 재정자립도는 35.6%로 경기도 내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하위권이다. 구리시는 전날까지만 해도 산적한 현안에 투입해야 하는 예산만으로도 재정상황이 빠듯하다며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청 홈페이지 민원 게시판에 ‘다음 선거에 당선되기 싫으냐’ ‘왜 구리만 가만히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등의 민원이 쏟아지자 구리시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전격적인 지급을 결정했다. 일부 시민들은 단체로 시청에 항의 전화를 걸어 한때 민원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구리시의 결정에 인접한 남양주시는 진퇴양난에 놓였다. 경기도 지자체 중 유일하게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지 못한 남양주시는 재정자립도가 34.7%로 구리시보다 더 재정이 열악하다. 조광한 남양주시장까지 나서 연일 시민들의 이해를 구했지지만 남양주시 홈페이지에는 ‘남양주만 역차별하는 시장은 물러나라’며 불만 게시글이 폭주했다.

결국 남양주시는 모든 시민에게 현금 10만원을 지급하기로 지난달 28일 결정했다. 선물카드 방식으로 지급하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현금 지급을 택했고 지급 대상 가구도 정부보다 많은 최대 7인가구로 정했다. 남양주시 4인가구는 정부 100만원, 경기도 40만원, 남양주시 40만원을 합쳐 180만원을 받는다.


남양주시민은 일제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주민들의 집단민원에 지자체가 손을 들면서 정책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백년대계를 준비해야 할 정책이 여론에 흔들리는 모양새가 연출되면 지방자치제도의 취지마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역별 형평성 논란에다 주요 사업 차질도=천차만별인 지자체별 지원금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대구시의 가구당 최대 지원금은 180만원이지만 경기 포천시는 280만원이다. 인천시민은 소득 하위 70% 기준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4인 가구 기준 최대 100만원이다. 반면 이웃한 경기 부천시는 같은 조건에서 최대 160만원을 받는다.

서울시도 중위소득 100% 이하인 소상공인의 경우 소상공인 재난기본소득 140만원, 중위소득 100% 이하에 지급하는 재난긴급생활비 40만원에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합쳐 280만원을 받게 된다. 서울시는 총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재원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마련하고 부족하면 진행 중인 다른 사업을 최소하거나 연기할 방침이다.

지자체들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예산을 끌어쓰면서 주요 현안 사업의 차질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올해 역점사업으로 장애인공공재활병원 설립을 내걸고 연구용역에 9,5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코로나19로 예산 지출이 늘어 1조원에 달하는 세출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체 도민에게 각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는 경기도는 재원 마련을 위해 극저신용대출 사업비를 기존의 1,0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삭감했다.

◇때아닌 ‘카드깡 논란’ 등 잡음 속출=지자체들이 선심성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서면서 지급 시점을 놓고도 일선 현장의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 말 서울시에서 경기 하남시로 이사한 시민은 서울시와 경기도 모두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서울시는 신청일까지 서울 거주 조건을 달았고 하남시는 지난달 23일 이전 경기도민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해서다.

일선 지자체에서 선불카드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때아닌 ‘카드깡’ 논란도 일고 있다. 모든 지자체가 긴급재난지원금 취지를 살려 대형마트 등을 제외한 지역 소상공인 업체로 사용처를 제한하자 인터넷 사이트에서 선불카드를 거래하는 얌체족이 늘고 있어서다. 카드깡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징역 3년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지만 지자체가 이를 단속하려면 또다시 행정력을 투입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자체별 재정자립도와 주민들의 빈곤 수준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포퓰리즘식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지자체에 만연한 상황”이라며 “늦은 감이 있지만 중앙정부에서 사전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려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자체까지 선심성 정책을 내놓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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