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전경./서울경제DB
정부로부터 1조2,000억원의 유동성 수혈을 받게 된 대한항공(003490)이 유상증자 등 추가 자구안을 내놓는다. 다만 대주주인 한진칼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 탓에 유상증자 셈법은 다소 복잡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달 중 이사회를 열고 유상증자 여부와 규모 등을 논의한다. 이사회 의결에 따라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해 자금 확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유상증자와 유휴자산 매각 등 최대 1조5,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마련해 산은과 수은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자구 노력을 전제로 대한항공에 대규모 자금 수혈을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24일 대한항공에 운영자금 2,000억원 지원, 화물 운송 관련 자산유동화증권(ABS) 7,000억원 인수, 전환권 있는 영구채 3,000억원 인수 등을 통해 총 1조2,000억원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반기 회사채 신속 인수 지원까지 포함하면 총 1조4,100억원을 지원하는 셈이다.
대한항공의 유상증자는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이 경우 대한항공의 대주주인 한진칼도 추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지분을 보통주 기준 29.96%(우선주 포함 29.62%) 보유하고 있어 대한항공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선다면 지분율에 따라 3,000억원 가량을 조달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한진칼도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로 구성된 ‘3자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이다. 현재 3자 연합은 KCGI(19.36%), 조 전 부사장(6.49%), 반도건설(16.90%) 등 총 42.75%의 한진칼 지분을 보유해 조 회장 측 우호 지분(41.30%)을 넘어섰다.
하지만 3자 연합 측도 유상증자에 참여할 자금이 충분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진칼이 조 회장에 우호적인 투자자를 확보해 주주 배정이 아닌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자구안 제출을 계기로 대한항공의 유휴자산 매각 작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대한항공은 현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송현동 부지를 비롯해 왕산레저개발 지분,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등을 매각하기로 했다. 서울시 등이 약 5,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송현동 부지 매입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항공 등 기간산업을 위해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만큼 추가 지원을 받기 위해선 자구안이 계속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손명수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지난달 항공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정부의 지원과 함께 항공사의 자구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며 항공사에 재무구조 개선과 자본확충 노력 등을 당부한 바 있다.
/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