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신선식품 코너에 달걀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올해 들어 1%대를 회복했던 소비자물가가 4개월 만에 0%대로 주저앉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국제 유가가 크게 떨어졌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외식 서비스 수요가 감소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둔화됐다.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영향이 남아 있던 1999년 이후 20여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95(2015년=100)로 전년 동월보다 0.1% 상승하는데 그쳤다. 지난해 10월(0.0%)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12개월 내내 0%대에 머물렀던 소비자물가는 올해 1~3월 1%대를 반짝 회복했다가 다시 0%대로 추락했다.
국제유가 하락폭이 확대되는 공급 요인과 고등학교 2학년 무상교육이라는 정책 요인이 복합 작용하면서 0%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분석이다. 먼저 석유류 가격은 지난해 유류세 인하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6.7% 하락했다. 경유와 휘발유는 각각 전년 대비 11.8%, 5.1% 떨어졌다. 공공서비스는 전년 대비 1.6% 하락했다. 올해부터 고교 무상교육이 3학년에서 2학년까지 확대되면서 고교 납입금이 64.0% 떨어진 영향이다.
반면 농·축·수산물 가격은 1.8% 상승했다. 가정 내 식재료 수요가 늘면서 수산물(8.1%)과 축산물(3.5%) 가격이 올랐다. 농산물은 채소 출하량이 늘면서 0.8% 떨어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바깥 활동이 줄면서 해외단체여행비(-10.1%), 호텔숙박료(-6.8%) 등도 하락했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근원물가)’는 전년보다 0.3% 상승해 1999년 9월(0.3%) 이후 20년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근원물가는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 영향을 크게 받는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상승률을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전년보다 0.1% 올랐다. 이 역시 1999년 12월(0.1%) 이후 20년 4개월 만에 최저다. 근원물가가 크게 둔화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통계청은 아직 디플레이션을 예측할 단계는 아니지만, 코로나19와 관련해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추이를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오는 6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방역’으로 전환되면서 수요 진작 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한 ‘긴급재난지원금’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안형준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상방·하방 압력이 다 있어서 여건을 말하기가 지난달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공급망 봉쇄와 붕괴·각 나라의 경기 부양과 유동성 공급·생활방역 등이 물가 상승 요인이고, 국제 유가 하락이 완전히 반영되지 않은 점은 물가가 하락할 요인”이라고 말했다.
/세종=조지원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