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만발' 이 꽃들은 어디서 왔을까

[6일부터 다시 만나는 김종학 '화업 60년' 회고전]
산·숲·꽃·나비·폭포 등 한국정서 담은 '설악산 화가'로 유명
회화·드로잉등 210점 부산시립미술관서 6월 21일까지 전시

김종학 2001년작 ‘백화만발’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설악산의 화가’라 불리는 원로작가 김종학(83)의 꽃 그림은 누구나 알아볼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가 젊은 시절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추상미술가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미술계의 ‘젊은 경향’은 단연 추상과 실험미술이었다. 전쟁이 기존 체제를 전복해버린 영향에 더해, 국전(國展) 위주로 판이 짜인 화단의 보수성에 대한 반발과 ‘촌스러운 동양’을 탈피해 서구 현대미술을 따라잡자는 의지가 일종의 시대정신이던 시절이다. 일제의 폭압이 절정이던 때 태어나 태평양전쟁의 삼엄함을 겪고, 이념의 비열함을 몸소 체험하며 성장한 김종학 또한 그랬다. 1960년대 추상미술 운동의 주요 동인이었고, 1975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해 대형 설치 행위예술을 선보이는 등 가장 전위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1977년 뉴욕행을 택했다.

“여러 활동들이 실험적 서구미술의 수용에만 그치는 것 아닌가 의문이었어요. 미국도 잭슨 폴락 등의 추상미술이 앤디 워홀같은 새로운 구상미술의 등장을 마주하던 시기였죠. 루시안 프로이트·프란시스 베이컨을 흠모하던 내가 뉴욕으로 가면서 먹과 한지를 챙겨 떠났고, 그곳에서 특정 사조의 화단 지배가 아닌 다양성의 공존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4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한창인 자신의 대규모 회고전 현장에서 만난 김종학이 털어놓은 고백이다. 1979년 귀국한 그가 돌연 설악산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자연의 섭리를 화폭에 옮겨 담기 시작한 사연이며, “나의 작업은 추상부터 시작해서 구상으로 왔지만, 추상에 기초를 둔 새로운 구상”이라고 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김종학.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의 지난 60년 예술세계를 회화·드로잉·목가구 등 210여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기념비적 전시는 지난 3월 6일 개막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미술관이 잠정 휴관에 돌입한 탓에 관객들은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없었다. 3개월의 기다림 끝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방역으로 전환된 6일부터 전시 관람이 가능해졌다. 이번 전시는 그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김종학의 1960~70년대 초기작을 최초로 한 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김종학 회고전이 1970년대 후반 이후의 꽃 그림 위주였던 데서 진일보한 성과다.

김종학 1959년작 ‘여인’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 1964년작 ‘추상’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 1975년작 ‘전구’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1959년 작을 필두로 어둡고 무거운 엥포르멜(격정적 감정 표현을 중시한 추상회화 운동) 경향의 60년대 추상화, 실제 전구가 매달린 듯 극사실적 화풍의 1975년작 ‘전구’, 뉴욕 시절 신문지 위에 그린 먹그림 초상화와 뉴욕을 담은 수묵 풍경 등이 선보였다. 1968년 일본으로 진출해 모노하(物派) 작가인 세키네 노부오를 비롯해 작가 겸 미학자이던 이우환과 교류한 김종학은 1970년 도쿄 무라마쓰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두 개의 상자를 흰 천으로 싸매고 중간 연결부가 꼬여있는 당시 출품작이 재현돼 전시장에 놓였다. 이 작품을 두고 이우환은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고 관계와 상태성의 강조로 물질이나 정신을 넘어선 자각을 일으킨다고 평했고, 요미우리신문은 “남북한 긴장 상태를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1970년 일본 도쿄 무라마쓰화랑에서 개인전 할 당시의 김종학과 요미우리신문이 “남북의 긴장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평한 설치작품.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 1984년작 ‘무제’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 2012년작 ‘달’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 1993년작 ‘폭포’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 2001년작 ‘봄’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 1998년작 ‘여름설악’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그렇게 기반을 다진 김종학의 예술철학은 ‘설악산 시대’에 이르러 그만의 새로운 화풍으로 꽃을 피운다. 산·숲·꽃·새·나비·폭포 등으로 경이로움과 감흥을 한국 정서로 표현한 그는 단절된 한국회화의 ‘색채성’을 되살려냈다. 서양식 원근법을 파괴하고 시선과 시점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녔다.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나 단원 김홍도의 ‘금강산 만물초’를 계승한 파격적 구도는 젊은 시절의 그가 그토록 꿈꾸던 우리 정체성에 기인한 새로움이다.

작가는 지난 2015년부터 설악산을 떠나 바다가 보이는 부산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팔순 고령에도 불구하고 3m 이상의 대작을, 조수 한 명 없이 오로지 혼자 그려내는 작가의 대형 신작은 숭고미마저 느끼게 한다. 길이 10m의 꽃 그림이 장대한 폭포처럼 펼쳐지는 작품은 “그림 그리기란 사람이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것”이라는 노화가의 읊조림과 공명한다. 그 뒤쪽에 걸린 최근작 ‘바다’는 검푸른 밤바다 저편의 수평선과 띄엄띄엄 떠 있는 고기잡이 배를 보여준다. 추상에서 기인한 구상화가 다시 추상과 손잡는 장엄한 광경이다. 전시가 예정대로 6월 21일에 막 내린다.
/부산=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부산시립미술관의 김종학 회고전 전경. /부산=조상인기자

부산시립미술관의 김종학 회고전 전경. /부산=조상인기자

부산시립미술관의 김종학 회고전 전경. /부산=조상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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