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죠.”
이시종 충북지사를 비롯한 간부급 공무원 20여명이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지 않고 기부하겠다고 브리핑한 지난 3일 이후 충북지역 공무원 김모(33)씨에게 고민이 생겼다. 직장에서 재난지원금을 기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급여 일부를 지역화폐로 받는 상황에서 김씨에게 40만원은 본봉의 4분의1에 달하는 큰돈이다. 하지만 왠지 기부를 해야 할 것만 같다고 털어놨다.
재난지원금 지급일이 다가올수록 김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주기로 하면서 공무원들도 지급 대상에 포함됐지만 받기도 전에 기부해야 한다는 묘한 기류가 흐르면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국회에서 “(재난지원금을) 당연히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의 질문에 답변한 것이지만 고위공무원이라면 당연히 재난지원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어감이 담겼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의 기부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정할 문제”라고 했다. 중식당에 데리고 가서 마음껏 시켜 먹으라며 “난 짜장”이라고 말하는 직장 상사 같았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도 은근한 기부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관제 기부’라는 비판을 피하고 싶은 정치권은 말로만 자발적 참여를 외치면서 여기저기서 기부를 부추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부의 뜻을 모으고 있는 주체로 ‘기업 임직원’을 콕 집으면서 부담은 더 커졌다.
이런 눈치 게임은 익숙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고통을 분담하겠다며 대통령과 장차관이 급여를 30%씩 반납하기로 하자마자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마다 동참 운동이 벌어졌다. 이때도 분명 자발적 참여라고 했지만 가만히 있던 이들이 정부 발표와 함께 릴레이 반납에 나선 것은 100% 자의(自意)라고 보기 힘들다.
기부는 반드시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문 대통령의 발언대로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부터 장차관 등 고위공무원들이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 반강제적인 분위기는 만들어진다. 이번 재난지원금 기부만큼은 비공개로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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