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한국노총 삼성그룹 노동조합 연대 출범 기자회견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공식 폐기하면서 양대노총의 삼성그룹 파고들기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는 특히 이 부회장의 무노조 원칙 폐기 공식 선언이 삼성그룹 소속 직원들의 노조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부회장은 6일 대국민 사과에서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헌법으로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존중하겠다고 밝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 이후 이어진 무노조 경영 방침에 작별을 고했다. 그간 삼성그룹은 법을 위반한 무노조 경영이 아닌 소속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조를 설립하지 않는 ‘비노조 경영’ 상태였다.
재계에서는 이날 이 부회장의 선언이 세를 불리려는 주요 계열사 노조에 상당한 힘을 불어넣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노조 가입이나 활동에 큰 부담을 느꼈던 개별 노동자들이 더 이상 ‘그레이존’에 머물지 않고 정식으로 노조 활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011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에서 물꼬를 튼 그룹 내 노조 설립 움직임은 다른 계열사로 확산되지 못했다가 2018년 들어 본격적화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개별 회사, 개별 노조마다 마주한 상황이 다른 만큼 일괄적으로 ‘이번 선언에 힘입어 노조 가입자가 크게 늘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설립 초기인 몇몇 노조에 긍정적인 신호로 읽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도 “당장 이날 선언이 노조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노조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했다.
노동계는 이 부회장의 발언을 환영하면서도 실질적인 ‘노동3권 보장’이 구현될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삼성SDI 등이 소속된 한국노총 금속노련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직접 무노조 경영을 포기한 만큼 구시대적인 기조가 바뀌었다는 신호가 그룹 전체로 전달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 폐기가 자칫 강성노조들의 세 불리기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어려운 경영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세 불리기가 이뤄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같은 날 한국노총은 산하 삼성그룹 노동조합 연대를 출범시키며 삼성그룹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삼성디스플레이·삼성화재·삼성전자 노조 등 6개 노조로 이뤄진 삼성노조연대는 국회 소통관에서 공식 출범식을 열고 노동3권 실현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000여명, 삼성화재는 350여명을 노조원으로 확보한 상태다. 이날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 시대에 걸맞은 노사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적대적이 아닌 공정하고 소통하는 노사관계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며 “노동조합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성실교섭에 나서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오상훈 삼성화재 노조위원장도 “노조 설립 초기인 만큼 설립 노하우도 공유하는 등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조직적으로 노조원들을 확대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삼성그룹 산하 노조들만의 특별한 조합원 확보 방법 등을 통해 직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도 노조 조직화에 힘을 쏟을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노조를 결성하지 않았거나 한국노총 산하 조직이 있더라도 소규모인 곳은 미조직전략조직실이 직접 나서 노조 설립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수민·허진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