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허니웰 인터내셔널의 N95 마스크 생산 공장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이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손가락으로 마스크를 가리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눈을 가리는 투명 고글만 착용한 채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피닉스=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미중 간 2차 무역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전력시설망에 사용하는 수입부품에 새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사전조사에 착수했다고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중심인 글로벌 생산망의 위험성을 절감하고 있는 미국이 전력부품 등 세부 분야별 탈중국 전략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FT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이날 변압기 등 전기부품 수입 규모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인지, 이들 전력수입품의 공급망에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해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서명한 외국산 전기부품의 미국 전력망 사용을 금지한 행정명령의 후속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미국의 전력망과 관련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전력망이 미국 시민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무기로 사용되면서 미국에 잠재적 위협이 돼 재앙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내 인프라 산업의 중국 의존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마스크·고글·장갑을 포함한 개인보호 의료장비의 거의 절반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글로벌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전력망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미중 2차 무역전쟁을 개시하기 위한 사전 조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벗어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는 전력과 통신 등 기간산업뿐 아니라 희토류 같은 신산업 핵심 원자재 부문에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해 미 국방부가 희토류 생산·공급기업 지원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의 1차 무역전쟁 때 희토류 생산지를 방문하는 등 희토류를 지렛대로 미국을 압박해왔다. 미국은 전략물자인 희토류 의존도를 줄이지 않고서는 중국과 전면전을 치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적극 지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희토류 가공시설 하나를 만드는 데 수억달러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정부 지원을 받는 미국 기업이 단기간 내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중국도 강력한 맞대응에 나설 조짐이다. 중국 내에서는 미중 2단계 무역협상을 연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내 소비위축으로 1단계 무역합의 이행이 쉽지 않아 궁지에 몰린 가운데 2단계 무역협상 거부라는 강공법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영문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우한연구소라는 주장을 펴며 중국을 공격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면 중국은 2단계 무역협상을 무기한 연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문은 중국이 협상연기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에 대해 “중미 양국 모두 코로나19 방역과 경기 하락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는 점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불확실성 등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며 “중국은 무역협상 타결에 있어 코로나19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보다 시급하지 않고 시간은 이미 경기회복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2차 무역전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중국은 영유권 분쟁지역에 남중국해에서 해상훈련을 잇따라 진행하며 무력시위에 나서고 있다. 중국중앙(CC)TV는 4일 중국군 항공모항 탑재 전투기 최고 조종사인 위앤웨이가 하이난도의 한 해군항에서 비행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중국 항모 중에서 남중국해 담당은 두 번째 산둥함이기 때문에 이 항모의 기동훈련이 있었던 셈이다. 2일에는 중국 해군의 구축함 타이위앤함과 호위함 징저우함 등이 남중국해에서 해적 퇴치를 명분으로 내세워 실탄 사격 훈련을 했다./박성규기자 베이징=최수문 특파원 뉴욕=김영필특파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