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2월22일 14척의 상선으로 구성된 연합군 수송 선단이 영국에서 소련으로 출발했다. 보급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소련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조치였다. 주위에는 구축함 6척과 2척의 견인함 등이 따라붙으며 근접 호위했다. 일주일가량 지난 12월30일 선단이 노르웨이와 소련 사이 공해인 바렌츠해에 들어서자 주변을 경계 중이던 독일 잠수함 U보트가 선단을 발견하고 곧바로 해군사령부에 ‘6~10척의 수송 선단 발견, 호위 전력은 빈약’이라는 무전을 보냈다.
보고를 받은 독일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은 근처에 있던 순양함·구축함·장갑함 등 10여 척의 함대를 현장에 급파했다. 전력상으로 자신들이 한 수 위라고 여긴 독일 함대는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겨울 바다의 시계가 적의 위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빴던 것이다. 당황한 독일 함대는 연합군의 ‘치고 빠지기’ 작전에 일방적으로 밀린 끝에 대패하고 말았다. 바렌츠해 해전 참패는 독일 함대의 종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바렌츠해는 노르웨이 북부와 러시아 국경이 접한 폭 1,046㎞의 바다다. 명칭은 인도로 가기 위한 신항로를 찾다가 이 바다를 항해한 16세기 네덜란드 탐험가 빌럼 바렌츠의 이름을 따왔다. 바다 양쪽에 위치한 러시아 무르만스크와 노르웨이 바르되는 부동항으로 군사적 가치가 높다. 실제 무르만스크에는 러시아 북부함대가 주둔해 있어 바렌츠해는 러시아 해군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2차 대전 때 이곳에서 독일군과 연합군이 치열하게 싸운 것도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었다.
미국 해군이 4일 냉전 후 30여년 만에 바렌츠해에서 군사작전을 펼쳤다. 북극해 항로의 항행 자유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난해 러시아가 북극해 부대를 창설하는 등 북극해 지역에서 군사력을 증강하자 미국이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나토군은 1980년대 중반까지 바렌츠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해왔으나 냉전 이후 중단한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남중국해 등지에서 미중 간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 바렌츠해 파고까지 높아지고 있어 신냉전이 본격화할까 걱정스럽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