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카네이션...자녀에 매 맞는 부모들

가족간 단절·금전문제로 불화
존속범죄 최근 4년새 2배 늘어
살해 사건도 매년 60건 육박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하고 도주하다 붙잡힌 피의자 허모(41)씨가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허씨는 존속살해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연합뉴스

# 지난달 27일 서울 동작구의 한 빌라에서 70세 할머니와 12세 손주의 시신이 비닐에 싸인 채 장롱 안에서 발견됐다. 피의자는 아들이자 아버지인 허모(41)씨로 드러났다. 허씨는 금전적인 문제로 모친과 다투다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어버이날이 있는 5월에도 부모가 자녀에 의해 숨지거나 다친 사건이 속출했다. 지난 4일 대구에서는 말다툼 끝에 80대 노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A(55)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치매가 있는 고령의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남성을 6일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다.

도리에 어긋나는 ‘패륜범죄’로 불리는 부모(조부모 포함)나 배우자의 부모를 대상으로 한 존속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존속범죄는 현행법에 따라 형량이 가중되지만 관련 범죄는 최근 5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족 내 불화를 완화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경찰청에 따르면 존속범죄 발생건수(존속살해 제외)는 2014년 1,347건에서 2018년 2,632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유형별로는 존속상해가 2014년 373건에서 2018년 403건으로, 존속폭행은 같은 기간 835건에서 1,845건으로 늘었다. 존속체포·감금은 20건에서 24건으로, 존속협박은 80건에서 152건으로 모든 유형에서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존속살해 발생건수도 2014년 60명, 2015년 55명, 2016년 55명, 2017년 47명, 2018년 69명 등 최근 5년간 총 28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매년 60건에 가까운 존속살해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형법에 따라 존속 대상 범죄의 경우 같은 범죄라도 가중처벌하고 있지만 패륜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존속범죄가 최근 몇 년간 급증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개인화에 따른 가족 간 소통의 부재와 심리적 단절을 꼽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가족끼리 서로 지지하거나 도와주는 기능이 약해졌다”며 “예전 같으면 삼촌이나 조부모가 스트레스를 완충해주고 돌봐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협조하는 기능이 떨어져 문제가 발생했을 때 폭행·살인 등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경제적 문제나 고령의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를 모시던 스트레스 또는 과거 학대를 받은 점 등이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형량 가중도 필요하지만 국가와 사회공동체가 관여해 사회복지 시스템 등으로 범죄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외국은 존속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을 하지 않는다”며 “양형보다는 부모 봉양에 대한 부담 등 가족의 문제를 사회공동체나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방향으로 종합 대책을 마련하는 데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도 “정부나 사회 차원에서 범죄 예방을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여성가족부나 교육부도 가족 문제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심기문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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