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애플리케이션 화면. 기자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신발·의류부터 시계까지 다양한 상품이 올라와 있다. /당근마켓 앱 캡처
# 직장인 조윤지(29)씨는 요즘 중고물품 직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에 푹 빠졌다. 집에 방치된 물건을 쉽게 처리할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은 저렴한 값에 구할 수 있는 매력 때문이다. 조씨가 당근마켓에 주로 내놓는 물건은 잘 입지 않는 옷과 안 신는 신발로 대부분 일주일 안에 팔린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직구로나 구할 수 있던 체온계를 당근마켓에서 단돈 7,000원에 구입했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나는 실내생활에 맞춰 보드게임도 사니 판매자가 “안 쓰는 물건이니 가져가라”며 다른 게임을 무료로 얹어줬다.
오랜 경기불황 속에 코로나19의 직격탄까지 더해지면서 온라인 중고거래가 저성장 시대의 새로운 소비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 탓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실용적 소비습관과 생활 속 재미를 추구하는 심리가 맞물리며 중고거래 장터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씨의 체험과정에는 당근마켓의 인기 요인이 그대로 응축돼 있다. ‘당신 근처의 마켓’을 표방하는 당근마켓은 이름대로 사용자가 위치한 지역에서만 거래를 할 수 있다. 휴대폰의 위치추적 기능으로 인근 지역에 올라온 물건만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식이다. 자신의 동네에서만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신뢰가 간다”고 입을 모은다. 물건을 들고 직접 나가야 하는 만큼 의류나 생활용품 같은 소소한 상품들이 주로 거래되고 시세 또한 저렴하다. 최정윤 당근마켓 매니저는 “당근마켓은 35~54세가 전체 이용자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에 비해 연령대가 높다”며 “특히 주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처럼 재미로 당근마켓을 구경하다가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당근마켓은 ‘신뢰감 있는 직거래’와 ‘소소한 물건’ ‘저렴한 가격’이라는 세 가지 메리트로 사용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매체인 ‘모바일인덱스’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근마켓 앱의 월 사용자 수는 지난 3월 기준 약 446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1월(135만명)과 비교하면 1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난달 10일에는 하루 이용자 수가 약 156만명을 기록하며 ‘온라인 유통공룡’이라고 불리는 11번가(137만명)와 위메프(109만명)를 제치고 일 사용자 기준 쇼핑 앱 2위에 올랐다.
중고물품 직거래 앱의 전성시대는 ‘불황형 소비의 단면’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도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중고거래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며 “평소 안 쓰는 물건을 버리기는 아까운데 직거래로 간단히 처분할 수 있는 장이 생기니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의 중고품 거래 앱 ‘메루카리’는 2018년 기업공개(IPO) 첫날 시가총액이 장중 한때 74억달러(약 8조1,792억원)까지 치솟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 교수는 “당근마켓의 인기가 보여주듯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하면 적게 사고 적게 쓰는 ‘미니멀리즘’이 소비문화의 새로운 주류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