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앞세운 한국형 뉴딜...화끈한 규제혁신 없어 성과 미지수

[2차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
비대면 의료사업 확대 한다면서 제도화는 국회 떠넘겨
주52시간 등 노동시장 변화없인 일자리창출 공염불
정책추진 과정서 또다른 칸막이 규제만 양산 우려도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가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국판 뉴딜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0815A03 한국판 뉴딜 10대 중점 과제

정부가 7일 공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의 밑그림은 비대면 중심의 디지털경제에 방점을 찍고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기존의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부양책 대신 5세대(5G) 이동통신 인프라 구축, 비대면 의료 확대 등을 통해 경제구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내용에는 구체적인 재원 규모가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원격의료 제도화’ 같은 화끈한 규제타파 방안도 없어 사업의 실질적인 효과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비대면 의료 서비스 육성…“원격의료 제도화는 아냐”=한국판 뉴딜 정책의 3대 축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로 설정됐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 ‘수집-개방·결합-거래-활용’ 등 전(全) 주기 인프라 강화 △금융·의료 등 6개 분야 데이터 활용 활성화 △5G 인프라 조기 구축 △5G+ 융복합사업 촉진 △인공지능(AI) 데이터·인프라 확충 △AI 융합 전 산업 확산 △비대면 서비스 확산 기반 조성 △클라우드 및 사이버 안전망 강화 △노후 SOC 디지털화 △디지털 물류 서비스 체계 구축 등의 10대 중점 과제를 선정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감염병 확산을 계기로 마련하는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기반의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혁신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라며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부양성 뉴딜 개념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강조했다.

10대 과제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교육·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한 비대면 산업 육성이다. 우선 비대면 교육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AI 기반의 원격교육 지원 플랫폼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음성·행동인식, 언어·시각정보 이해 등 AI 학습용 빅데이터를 구축해 전문인력을 집중 양성할 계획이다.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도 확대한다. 의료 취약지에 거주하는 만성질환자·거동불편자 등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과 전화상담 중심의 시범사업 대상을 확대하고 인프라를 보강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료계나 학계에서 우려하는 ‘원격의료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원격 진료와 처방 등의 전문적 의료행위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의료법 개정을 통해 접근해야 할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밖에 금융·의료·교통·공공·산업·소상공인 등 6대 분야에서 데이터 수집과 활용을 확대하는 방안도 담겼다. 또 5G 전국망을 조기 구축하고 공공 와이파이 등 공공정보통신망을 확충하기로 했다. 아울러 도로·철도 등 노후 SOC 시설에 ‘스마트 관리체계’를 도입하고 SOC 관련 데이터 수집·가공·공유 시스템을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세부사업을 마련해 오는 6월 초 한국판 뉴딜의 최종 방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 가속화” 기대 속 “규제혁신 의지 부족” 지적도=재정 투입과 규제 개혁을 병행 추진해 한국판 뉴딜을 이끌겠다는 구상에 대해 전문가와 정보기술(IT) 업계는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우선 업계는 이번 사업을 계기로 5G와 AI·클라우드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국회가 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을 통과시키면서도 시행령 개정을 통해 데이터 활용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어 산업계의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디지털 기반 사업을 활성화하자고 하면서 정작 칸막이 규제나 비대칭 규제를 양산하면 모두 도루묵이 된다”고 지적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판 뉴딜의 전체적인 방향성은 나쁘지 않다”면서도 “이 사업은 예산을 쓰는 것보다 규제를 개혁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과제인 만큼 일괄적인 주 52시간 제도 적용, 노동시장 경직성 등과 같은 규제에 대한 전향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뉴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아직 밑그림 수준임을 고려해도 감염병 사태 이후 경기상황을 획기적으로 반전시킬 과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경기를 확실히 부양하려면 결국 전통적인 방식대로 SOC 관련 토목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나윤석·한재영기자 권경원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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