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션샤인’이 종영한 뒤 ‘김은숙은 최고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그동안 보여준 로맨스물에 역사를 접목시켜, 남녀의 사랑을 애국심으로 극대화시키는 전무후무한 일을 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쭉 잊고 지냈다. ‘태양의 후예’와 ‘상속자들’은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안봐도 보이는 러브라인과 좋은 말로 은은하게 귓가를 감싸는 대사, 정형화된 캐릭터 등 판타지를 꿈꾸는 여성 시청자를 겨냥했던 설정의 문제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약자가 돼야만 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그 판타지를.
제목부터 순정만화처럼 느껴지는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초반부는 10년전 방송된 ‘시크릿 가든’과 많이 닮았다. 김 작가의 작품의 큰 줄기는 항상 같았다. ‘돈·권력·외모 다 되는 까칠한 남자와 성깔 있는 여자의 러브스토리.’ 재벌 남자와 액션배우 여자의 몸이 뒤바뀐다는 설정을 ‘평행세계’로만 살짝 방향을 틀어놓은 듯 했다. 리모델링한 아파트처럼 말끔해진 그때 그 로맨스는 겉은 화려하나 배관에 스며든 녹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소소한 재미로 보는 로맨스물 작가’라는 편견은 ‘도깨비’가 벗겼다. 죽지 않는 몸을 통해,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을 통해 기억과 잊혀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도깨비는’ 흥행과 호평 모두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사랑 이야기에 잘 심어둔 메시지가 마지막 순간 꽃으로 피어오르는 힘을 봤다. 폭정과 친일파에 밀려 결국 총을 들게 된 보통 사람들, 그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역사책에서 보던 독립군 사진 한 장에 담겨있음을. 이를 느낀 순간 지켜보던 모두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받아들였다.
‘미스터 션샤인’은 고애신(김태리)를 사랑하는 유진초이(이병헌), 구동매(유연석), 김희성(변요한)이 각각 총·칼·붓 저마다의 능력과 힘으로 지켜내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여기에 행랑아범(신정근), 함안댁(이정은)을 비롯해 수많은 평범한 이들조차 하나같이 애기씨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다. 낮에는 고고하고 밤에는 총을 들어 배신자를 처단하는,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모두가 존중하며 지켜내려 했던 고애신이 결국 조선이자 ‘우리나라’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 ‘작가의 말’에 모두 울컥하게 된다. 복선과 비어있는 공간이 꽉 찬다.
‘도돌이표’같다.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을 두고 ‘더 킹’은 과거로 간다. 주인공의 가치와 역할은 가볍고 떠돈다. 주인공 정태을(김고은)은 그저 ‘형사’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시점까지 그는 대한민국에선 범인을 잡고, 대한제국에선 이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후반부 만파식적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과거 이곤을 구한 사건의 비밀이 당연히 풀리겠으나….
시대가 급변한지 조금 된 것 같은데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한발 더 나아간다. 정태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총리라는 구서령(정은채)은 설정부터 자극적인 판타지다. 브래지어 와이어 대사부터, 매 장면 패션쇼에, 황제와의 억지 스캔들에…알고보니 흙수저 출신에 권력욕으로 가득한 인물이라니. 2000년대에는 각광받는 악역 캐릭터의 표준과 같았으나, 현재는 비하논란으로 번지기 아슬아슬 하다.
과연 절바나을 앞둔 시점에서 정태을은 어떤 무기를 숨기고 있을까. ‘파리의 연인’과 ‘시크릿 가든’과 ‘태양의 후예’에서 본 것 같은 정태을의 모습에 사실 대반전이 있으며, 시청자들은 ‘미스터 션샤인’ 이상의 충격과 감동을 안고 작품을 기억할 수 있을까.
고애신과 이곤이 만났으면 진짜 끝내줬을 거라는 생각이 왜 자꾸만 드는지 모르겠다.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