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마우스
블랙팬서
미키마우스가 앞장 섰고 ‘토이스토리’ 친구들의 호위를 받으며 엘사와 안나가 뒤를 따른다. 라이온킹과 뮬란, 실사로 재탄생한 알라딘도 빼놓을 수 없다. 블랙 팬서와 블랙 위도우의 엄호 속에 등장한 ‘어벤져스’와 ‘스타워즈’ 군단까지.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디즈니’ 소속이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디즈니가 80조원에 21세기폭스를 인수하면서 ‘아바타’와 심슨 가족, X맨까지도 한 식구가 됐다.
월트 디즈니가 생쥐 한 마리(미키마우스)를 시작으로 1923년에 창업한 ‘디즈니’는 100년을 앞둔 역사 속에서 시가총액 300조 원의 세계 1위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만 ‘어벤져스:앤드게임’부터 ‘겨울왕국2’까지 전 세계 흥행 영화 톱10 중 7편을 디즈니가 휩쓸었고 수익 총액은 11조 원을 넘겼다.
디즈니가 항상 꿈같은 나날만 누린 것은 아니다. 신간 ‘디즈니만이 하는 것’의 저자이자 디즈니의 최고경영자인 로버트 아이거가 CEO 자리에 오르던 2005년만 하더라도 디즈니는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중이었다. 책은 콘텐츠 기업을 차례로 인수합병해 ‘디즈니 은하계’를 구축한 저자의 극적인 브랜드 부활의 여정을 담고 있다.
뉴욕 롱아일랜드의 가난한 집안 장남으로 태어난 아이거는 공중파 방송국의 뉴스 앵커가 되고 싶었다. 뉴욕의 작은 케이블 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그는 우연찮은 기회로 ABC 방송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뉴욕의 양복쟁이’였던 그는 이후 승진을 거듭하며 로스앤젤레스(LA)에서 ABC엔터테인먼트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모두가 반대하던 ‘트윈픽스’, 누구도 도전하지 않던 ‘천재소년 두기’와 ‘뉴욕경찰 24시’를 화제작으로 만들었고 ABC는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후 ABC는 디즈니에 인수됐다.
“나는 늘 팔려다녔다”는 피인수 회사 출신의 그가 이례적으로 인수 기업인 디즈니의 CEO가 되기까지는 운보다는 인재 발굴 능력과 과감한 결단력이 크게 작용했다. 아이거가 ABC 사장이자 디즈니의 COO였을 때만 해도 ‘픽사’는 디즈니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사 관계였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픽사의 CEO를 겸했다. 양사가 공동 제작한 ‘토이스토리’는 최초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장편 극영화로 전 세계 4억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고, ‘벅스 라이프’와 ‘몬스터 주식회사’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디즈니의 직전 수장인 마이클 아이즈너는 잡스와 갈등이 잦았다. 아이즈너 회장이 물러나고 CEO 시험대에 오른 아이거는 픽사를 아예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거는 픽사를 ‘디즈니화’ 하지 않겠다며 “픽사는 계속 픽사다워야 한다”는 말로 잡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창작자 집단을 기반에 둔 마블을 인수하고, ‘스타워즈’의 창시자 조지 루카스를 설득해 루카스 필름을 받아들일 때도 그의 마지막 가장 강력한 무기는 ‘신뢰’와 ‘진실성’이었다. 저자는 “각각의 협상이 단 한 명의 지배적 존재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면서 “결국 최종적인 계약의 성사 여부는 매번 인간적 요소에 좌우됐다”고 털어놓는다. ‘디즈니’의 품으로 들어가지만 콘텐츠의 본질이 존중받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아 더 가치를 키울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자서전이지만 결코 자서전이지만은 않은 이 책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솔직하다. 루퍼트 머독의 개인 와이너리로 초대받아 “대선에 출마할 건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니요”라고 답했지만 실은 정치에 관심이 많고 대선 출마도 내심 검토했었음을 고백한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특수 상황이 아닌 모든 업계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CEO의 5가지 원칙도 소개한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의성을 장려할 것, 신뢰의 문화를 구축할 것, 지속적인 호기심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것,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수용할 것, 정직하고 고결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 엔터 그룹의 CEO이자 인수합병의 귀재가 들려주는 조언이라 하기에 너무 우아하지 않은가? 어릴 적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1만9,8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