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W]에르도안 금리개입 탓 자본유출 가속...통화가치 뚝 떨어지고 고물가 시달려

■추락하는 터키 경제
'C스톰' 겹치며 보유외환 바닥
IMF '올 5% 역성장' 전망 속
1년내 디폴트 가능성 경고도
남북분열 유럽에 새 암초 우려


터키 리라화는 7일(현지시간) 국제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달러당 7.49에 거래되며 리라화 가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미 경제매체 CNBC가 보도했다. 2018년 8월 리라화 폭락사태 당시 최고치인 7.236을 훌쩍 웃돈 것이다. 이 때문에 터키 금융감독 당국은 이날 BNP파리바, 씨티은행, UBS은행 등 글로벌 은행 3곳의 리라화 거래를 금지하는 초강수 조치를 내렸다. 시장에서는 터키가 아르헨티나처럼 자본통제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터키 경제가 통화가치 하락과 고물가에 시달리며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경제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 ‘마이웨이’ 행보를 펼치고 있는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허술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터키의 위기는 국경을 맞댄 유럽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리라화 가치 하락은 바닥난 외환보유고와 관련이 깊다.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의 충격이 본격화하면서 터키를 비롯한 신흥국들에선 자본유출이 거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월 터키의 외환보유액이 190억달러(약 23조원)나 줄어들면서 총 외환보유액이 560억달러 정도를 기록했다”면서 “실제 규모는 훨씬 적을 수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체 외환보유 규모가 250억달러 수준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더구나 터키 은행들이 빌린 790억달러 규모의 외화채무 만기가 내년 2월로 다가오고 있어 외환보유고 고갈 압력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게 WSJ의 전망이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의 과도한 금리 개입이 자본유출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터키중앙은행은 2018년 리라화 폭락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해 가까스로 통화 위기를 수습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에 다급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금리인하에 반대한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해 금리를 내리도록 했다. 그 결과 지난 10개월 동안 무려 8번이나 금리인하가 이뤄져 기준금리가 24%에서 8.75%로 내려갔다. 터키 경제가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이유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봉쇄조치의 일환으로 통행금지 울타리가 세워져있다./이스탄불=EPA연합뉴스

이 같은 경제 여건의 악화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실시간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터키의 코로나19 확진자는 8일 현재 총 13만3,721명으로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많다. 사망자 수도 3,641명에 이른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봉쇄 조치를 뒤늦게 내리면서 초동 대처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4월 들어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터키 경제를 떠받치는 관광산업도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터키의 연간 관광수입은 약 370억달러로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 올해 터키 경제가 5% 역성장할 것이란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취약한 터키 경제의 민낯이 드러났다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 사상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터키는 IMF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터키를 비롯한 모든 신흥국과 자금 지원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터키 대통령실 측은 며칠 후 IMF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 6일에도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은 IMF에 손을 벌릴 생각이 없다는 방침을 확고히 밝혔다. 블루베이에셋 매니지먼트의 티모시 애쉬 선임 신흥국 시장 전략가는 “외화유출이 심각한 상황에서 IMF와의 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터키 정부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지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3월 한국 등과 맺은 통화스와프를 자국과도 체결해달라는 요구다. 하지만 연준 내부에선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고 미 외신들은 전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아가테 데마라이스 글로벌 전망 디렉터는 “터키중앙은행은 최근 몇 년 간 에르도안 대통령의 간섭을 받아 통화 당국으로서의 신뢰성이 추락했다”면서 “연준은 터키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 문제를 우려해 터키의 통와스와프 요청에 응하는 것을 여전히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터키가 러시아로부터 S-400 방공미사일을 구매하기로 하면서 불거진 미국 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연준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터키 경제위기의 돌파구가 안 보이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유럽에 미칠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수습을 위한 코로나 채권 발행을 놓고 남북으로 분열한 유럽이 터키 문제라는 또 하나의 암초를 만난 셈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1년 내 터키의 디폴트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FP는 “유럽 지도자들이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만 신경 쓰지 말고 터키를 비롯한 인접 국가들이 처한 문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스와프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6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이 거리를 지나고 있다./이스탄불=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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