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문재인의 '디지털 뉴딜'...노동·규제개혁 없인 말짱 공염불

美 벤치마킹 '한국판 뉴딜' 밑그림 공개
'디지털 인프라, 언택트 육성' 기본 뼈대
비대면 의료 시범 사업 확대 계획 불구
법 개정 필요한 '원격의료'는 산 넘어 산
"주52시간 강제, 디지털 인력창출은 모순"
네거티브 규제 전환없인 '뉴딜' 성과 한계


미국은 1930년대 산업을 부흥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뉴딜(New Deal)’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했습니다.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지휘한 뉴딜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빈곤 구제’와 ‘제도 개혁’이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6월 초 최종 확정을 목표로 준비 중인 ‘한국판 뉴딜’도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이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롤 모델이 바로 루스벨트이고, 일정 부분 ‘정책 우(右) 클릭’에 대한 지적을 감수하고라도 ‘한국판 뉴딜’을 통해 장기집권의 꿈을 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경제 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열린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한국판 뉴딜의 개략적인 구상을 공개했습니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의 디지털화를 ‘3대 축’으로 설정하고 데이터 수집·활용 확대,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 가속화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른바 ‘언택트’라고 불리는 비대면 중심의 디지털 경제에 무게중심을 두고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체질을 혁신하겠다는 것이죠. 홍 부총리가 “감염병 확산을 계기로 마련하는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기반의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혁신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라며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부양성 뉴딜 개념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말 그대로 밑그림에 불과한 상황이고 정부가 배포한 7쪽짜리 자료에는 피부에 곧장 와 닿지 않는 내용이 많아 여러 전문가에게 직접 자료를 보내고 평가와 의견을 부탁해봤습니다. 그 중에서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의 분석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강 교수의 지적을 취사선택 없이 그대로 들어보겠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감염병 사태’는 경제체질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설정한 방향성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냉정히 말하면 ‘좋은 말’은 잔뜩 써놨는데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는 의문 부호가 달린다. 정부 자료에는 ‘사람 투자를 통한 디지털 선도인력 양성’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 위에는 ‘규제 개혁과 제도 개선을 병행 추진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도 적혀 있다. 디지털 선도인력도 좋고, 규제 개혁, 일자리 창출도 다 훌륭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노동시장에 대한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과연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본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적용을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있으나 사실상 ‘주 52시간 제도’를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디지털 선도인력을 양성하겠나. 노동 경직성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개혁 없이는 ‘한국판 뉴딜’이 겉만 번지르르한 포장술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유념해야 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제단체 관계자의 평가도 ‘기대 반 우려 반’의 속내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기존에 이해관계자 등의 반발로 쉽게 추진하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관심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바이오든 정보기술(IT) 업종이든 허다한 규제 탓에 막혀 있던 산업을 전향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됐다는 것이죠. 하지만 따끔한 일침과 충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서비스산업 전반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물꼬를 터줘야 한다”며 “법률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완전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 신산업의 문턱을 크게 낮춰야 ‘한국판 뉴딜’의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 전문가의 당부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화끈한 규제타파에 대한 의지가 아직은 정부에게 부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경제주체의 이해관계를 두루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겠죠. 대표적인 것이 원격의료 이슈입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통해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의료 취약지에 거주하는 만성질환자·거동불편자 등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과 전화상담 중심의 시범사업 대상을 확대하고 인프라를 보강하겠다는 것이죠. 아니나 다를까 언론 브리핑에서 바이오 업계의 숙원이나 다름없는 원격의료 도입이 가시화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으나 정부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의료계나 학계에서 우려하는 ‘원격의료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원격 진료와 처방 등의 전문적 의료행위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의료법 개정을 통해 접근해야 할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정 수가 개발, 환자 보호 방안, 상급병원 쏠림 해소 등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합의를 통한 국회 입법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달 둘째 주부터 약 보름간 집중적인 논의를 거쳐 재원 규모와 세부사업을 확정해 6월 초에 발표한다는 계획입니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깜짝 놀랄 만한 창의적 아이디어와 획기적인 규제 개선으로 ‘감염병 쇼크’가 초래한 폐허 위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함께 지켜볼 일입니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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