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제주도에서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삶 자체가 너무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서울 중랑구에서는 40대 아들이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함께 사는 아버지를 부축해 화장실에 가던 중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자 복부를 가격했고, 얼마 후 아버지는 숨을 쉬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다.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5월 가정의 달이지만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비극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간병살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극심한 간병 스트레스가 한 가정을 파탄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극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선 노인 간병이나 장애인 돌봄이 필요한 가정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매 부모나 장애 아동을 가정에서 돌보는 자식과 부모들은 존속·비속 대상 범죄 사건을 접할 때마다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발달장애 딸을 둔 강복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외협력이사는 “제주도 사건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그런 일이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치매 부모를 돌보는 A씨는 “치매에 걸린 부모님이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인 건 분명한데 그 존재가 부모라 어쩌지도 못한다”면서도 “잠시 부모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그 후엔 몇 배의 죄책감에 괴로워할 뿐”이라고 말했다. 치매 부모를 돌보는 또 다른 보호자도 “고통을 참는 게 너무 힘들어 차라리 누군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치매 부모나 장애인 자녀에 대한 돌봄이 오롯이 가족에게만 맡겨져 있으면 극한의 상황에 치달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치매 환자나 장애를 가진 경우 24시간 돌봄이 필요하지만 가족이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돌보기에는 물리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던 구성원이 돌봄을 전담할 경우 생활고까지 겹치며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가족이 전담해 돌봄을 하면 누군가는 경제활동을 중단하게 되면서 저소득층에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생활고와 간병에 따른 스트레스가 가족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가족이 돌봄을 모두 떠안을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외부요인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제주도 사건도 코로나19로 학교가 쉬어 집에서 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이 가중되며 발생한 사건이다. 강 이사는 “발달장애 학생 1명당 120시간 가량의 돌봄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긴 하지만 턱 없이 부족하다”며 “코로나19로 휴교하자 온 가족이 출동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가족이 모두 짊어지고 있는 돌봄 책임을 사회도 함께 나눠 짊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치매나 장애 가족을 돌보다가 범죄가 발생하는 건 분명한 사회의 탓”이라면서 “국가에서 지급하는 경제적 지원금부터 강화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고 전했다. 김 사무국장도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과 치매 노인이 가족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기문기자 do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