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관희 전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北, 김정은 등장 하루만에 GP총격
1.5km서 4발 명중 ‘의도적 도발’
이대로 방치땐 안보파탄 불보듯
국제사회 도움얻어 재앙 대비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 세계를 달군 수술설·뇌사설을 불식시키고 공개 등장한 지 하루 만에 북한군이 우리 군 감시초소(GP)에 구경 14.5㎜ 중기관총 공격을 가해왔다. 국방부는 우발적 사건으로 진단하나, 사거리 1.5㎞ 이상에서 네 발이나 명중시킨 것은 의도적 도발 행위임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논란이 일자 유엔사령부가 독자적으로 특별조사에 나섰다. 비록 북한군의 비협조로 정확한 조사는 어렵겠지만 안보불감증이 비정상적으로 만연해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지금,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유엔사의 역할에 희망과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지난 1978년 한미연합사로 이관된 후 유엔사의 주된 임무는 정전체제를 관리·감독하는 것이고, 이번 조사도 이 임무에 입각해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점검하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침략 요건인 군사적 의도와 능력 모두를 평가절하하니, 유엔사의 특별조사가 사실 규명과 김정은의 대남 전략·전술 심리 파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전작권 전환 강행으로 한미연합사 기능이 무력화되려는 현시점에서 유엔사의 역할이 갖는 안보적 함의는 심대하다. 유엔사는 연합사와 달리 한미 양국의 쌍무 결정이 아닌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창설됐으므로 국제법과 국제기구 차원에서 연합사보다 상위의 위상을 보유하며 제도적으로 안정된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 6·25전쟁 발발 직후 설정된 ‘북한의 무력공격 격퇴’라는 본연의 목표는 정전 후 한반도가 국제법적 교전 상태로 남아 있는 지금 ‘전쟁억제와 평화수호’로 변용돼 유지되고 있다.
유엔사는 안보리 결의로 창설됐기에 그 해체도 안보리 결의가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엔사의 한반도 존립근거는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북한의 현존하는 위협이다. 따라서 향후 운용에 있어 한국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의 특정 정권이 자유민주 국가 정체성을 무시하고 적대세력인 북한 정권과 연대해 국가존립을 위태롭게 할 때, 유엔사의 국제평화·안보 유지 권능을 되살려 나라를 구하는 것이 불가피한 대안일 수 있다. 미국이 연합사의 불구 상황에 대비해 유엔사의 권능을 강화하는 노력을 경주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의 깜짝 쇼 이후 그의 건강 보도의 진위를 놓고 극도의 반목과 분열상이 노정된 것은 대북관 불일치에 따른 우리 내부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징표이다. 김정은 잠행의 결정적 동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타격으로 인한 심적 부담 해소 또는 자신의 코로나19 감염 회피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북중 관계가 크게 위축되면서 3월 북한의 대중 무역은 90% 이상(수출은 96%, 수입은 91%) 격감하고 양측 간 인적·물적 교류는 전면중단 상태에 이르렀다. 일부 주민들이 배급 단절을 뜻하는 ‘절량’ 상황에 이르러 사회 혼란이 가중됐다고 한다. 아울러 고질적인 발목관절 질환인 ‘족근관증후군’의 재발 가능성도 점쳐진다. 2014년 10월 이를 치료하기 위해 41일 잠적한 후 지팡이에 의존해 공개석상에 등장한 적이 있다.
북한 정권은 고사총 도발 이후 한마디 해명이나 유감 표명 없이 우리에게 “군사적 대결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는 적반하장 선전공세를 재개했다. 평양 인근 신리에 대규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설이 완공을 앞두고 있고, 함남 신포조선소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용 3,000톤급 잠수함 3척이 건조 중이라는 소식이다.
세상만사에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게 마련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안보 파탄은 예정된 수순이다.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도 남북철도 연결 및 비무장지대(DMZ) 견학·관광 등 ‘우리민족끼리’에 올인하는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 유엔 등 국제사회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안보 재앙에 대비하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