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콜로냐


1633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무라트 4세는 화재 원인이 담배 불씨로 밝혀지자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초강력 금연법을 선포했다. 거리에서 손을 검사해 담배 냄새가 나면 무거운 벌금을 매기고 심지어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술탄 스스로 거지로 분장해 흡연자를 적발했을 정도다. 당시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이들만 수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에 겁을 먹은 터키인들은 담배 냄새를 없애기 위해 레몬 향수인 ‘콜로냐(kolonya)’를 뿌리게 됐다.

콜로냐는 에틸알코올 80%에 레몬이나 오렌지·꽃 같은 천연향을 첨가해 만든 터키의 국민향수이자 소독제다. 14세기 피렌체의 산타마리아수도원에서 ‘아쿠아레지나’라는 이름으로 탄생했고 이탈리아의 한 사업가에 의해 독일 쾰른에서 본격 생산됐다. 처음에 ‘오드콜로뉴(쾰른의 물)’로 불린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19세기 말 압둘 하미트 2세가 당시 소독제로 수입했던 장미수를 대체하는 제품으로 콜로냐를 애용하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콜로냐는 초기에는 상처를 치료하거나 근육통증을 낫게 하는 의료용으로 많이 쓰였다. 일부에서는 설탕조각에 콜로냐를 떨어뜨려 소화촉진제로 먹기도 했다. 그 뒤 19세기 말부터 터키 각지에 공장이 세워져 대량 보급되면서 손님을 집으로 초청할 때 환대의 상징으로 이 향수를 활용하는 관습이 국민들 사이에 뿌리내리게 됐다. 터키에서는 식당이나 카페·화장실 등 어느 곳에서도 콜로냐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콜로냐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극심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콜로냐의 살균효과가 널리 알려져 평소의 5배를 웃도는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급기야 터키 정부는 하루 구매량을 1인당 1개로 제한하는 등 배급제를 실시하는 한편 관련 규제를 폐지해 생산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덕분에 터키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이 한풀 꺾였다고 한다. 터키 전통의 향수가 코로나19에 맞서 소중한 생명을 지켜준다니 선조들의 지혜에 고마워할 일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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