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의 ‘후아유’ 플래그십 스토어 앞에 영업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박민주기자
패션과 뷰티 1번지로 꼽히는 명동의 암흑이 깊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17년 중국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 당시 악몽이 재현되면서 불꺼진 매장이 늘고 있는 것. 사드 때는 중국인 관광객에 국한했지만 이번에는 모든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 뿐만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도 발길을 끊으면서 패션과 뷰티 기업의 경우 명동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포기하고 가로수길 등 니치 마켓을 찾아 이전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명동의 터줏대감인 이랜드도 8년 만에 SPA 브랜드 ‘후아유’의 명동점 영업을 종료하고 다음 달 가로수길로 이전한다.
◇8년 만에 명동 떠나는 ‘후아유’=13일 업계에 따르면 이랜드는 후아유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의 영업을 이달 말까지 마치고 6월 중순 가로수길로 이전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2~3층은 영업을 종료했고, 1층에서 오는 17일까지 영업 종료에 따른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후아유 명동 매장 철수로 한때 20여개에 달했던 명동의 이랜드 매장은 14개로 줄어든다.
이랜드는 지난 2012년 후아유를 SPA(제조·유통 일괄화 의류) 브랜드로 전환해 명동 중앙로 인근에 300평 규모의 대형 매장을 열었다. 가격대는 기존보다 30% 낮춰 아동복과 잡화 부문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국내외 SPA 시장 경쟁이 격화된데다 명동 상권을 찾는 관광객이 줄면서 영업 종료를 결정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 관계자는 “후아유가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브랜드 콘셉트를 바꾸어 트렌디한 상품 위주로 전개하고 있다”며 “명동의 대형 매장보다는 트렌디한 상품의 수요가 높은 가로수길 매장이 더욱 적절하다고 판단돼 이전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명동의 한 거리에 나란히 공실로 비어있는 매장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박민주기자
◇‘사드 악몽’ 재현…명동 곳곳에 ‘임대 딱지’=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명동 상권은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이후 매출이 90% 이상 급감하며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국내 최초의 신인 디자이너 편집숍 ‘에이랜드’가 2006년부터 운영해온 명동점을 폐점했으며 아모레퍼시픽의 멀티 뷰티숍 ‘아리따움 라이브’ 명동점도 오픈 10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영업을 일시 중단한 매장도 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중앙점을 비롯해 명동 주요 거리 화장품 매장 20여곳은 ‘임시 휴업’ 안내문을 걸고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명동의 한 상점 주인은 “인건비도 안 나와 운영 시간도 단축하고 아르바이트 직원도 줄였다”며 “한 집 걸러 공실인 상황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공실률 역대 최고, 4~5월 폐점 러시 예상=명동의 공실 대란은 앞서 지난 2017년 중국과 사드 갈등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에는 중국인 관광객만 줄었지만 올해는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국내 소비자들도 발길을 끊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 4주부터 3월 3주까지 명동 상권의 매장 방문객은 90.6% 감소했다. 쿠시먼 관계자는 “매장 방문객 수 감소는 고스란히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매출지표가 임계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4~5월 이후 폐점 사례가 본격 발생하며 공실률도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명동의 공실률은 이미 역대 최고를 찍고 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 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명동의 공실률은 8.9%로 2015년 4·4분기(10.4%)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에 온라인 쇼핑 성장 등으로 올해 공실률은 10%대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명동의 한 부동산 업체 대표는 “임대료 감당이 어려워져서 권리금을 손해보고 내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문을 닫은 매장들은 수개월째 주인을 못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