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선진국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을 이용해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정 자산 규모 이상의 사업자에게 신고를 의무화하고 등록유지 여부를 무기로 국가가 이들을 통제하도록 한다. 이 부가통신사업자 신고제는 인터넷실명제가 그렇듯이 인터넷의 자유를 제약한다.
인터넷은 인간의 사상과 정보를 교환하는 통신에 있어서는 사적 영역을 극대화하여 공공성을 쟁취하자는 사회발전모델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어플이나 콘텐츠를 여러 사람에게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행위 자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각종 부작용을 낳는다.
거기에 더해 지난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전격적으로 부가통신사업자들의 온라인서비스의 물리적 핵심을 이루는 ‘데이터센터’를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세울 의무가 부과되는 설비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조문상 “국가정보화기본법 23조의3에 따른 데이터센터”라고 되어 있는데 국가정보화기본법에는 “정보통신서비스의 제공을 위하여 다수의 정보통신기반을 일정한 공간에 집적시켜 통합 운영·관리하는 시설”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공공재인 공중파 그리고 도로 위 아래의 관로 및 전봇대를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방송통신 사업자들에게 이에 상응하는 공적책임을 지우는 것은 당연하다. 재난시 방송통신의 기능적 공공성에 비례하게 지상파TV방송사업자, 종합편성채널, 뉴스전문채널, 특정 규모(가입자수 10만 이상 또는 회선 50만)이상의 기간통신사업자에만 한정하여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센터는 그 스스로가 방송도 아니고 통신도 아니며 그 자체는 정보의 보관장소일 뿐이다. 옛날로 따지면 책장, 서고같은 것이다. 인터넷의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보의 보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개인과 기업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사적 영역에 남겨져야 한다.
학교, 병원, 회사, 심지어는 가정에도 자신의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둘 수 있다. 이들에게 모두 재난관리계획을 세우도록 강제하고 공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다양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할 인터넷의 발전에 역행할 수 있고 국가감시의 위험도 있다.
“타인의 개인정보”를 보관하는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규제를 둘 수 있다. 개인정보의 손실은 정보주체의 생명, 건강 및 자유에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규제라면 정보통신망법에 이미 존재한다.
이번 데이터센터법은 타인의 개인정보를 보관하지 않는 경우에도 아니 심지어는 개인정보가 아닌 정보를 보관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재난시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긴절할 필요를 해당 공공재를 평소에 이용하는 사업자에게 부담 지우자는 원래의 기획과 어긋난다.
특히 데이터센터는 인터넷의 발전과 뗄래야 뗄 수 없다. 사실 데이터센터는 IDC 즉 인터넷데이터센터를 말한다. 인터넷은 클라이언트서버모델로 이루어지는 통신체계이다. 즉 서버에 정보를 올려놓으면 클라이언트들이 요청을 해서 받아감으로써 통신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서버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데이터센터이다. 그렇다면 데이터센터에 안전관리계획을 사전에 제출토록 한다는 것은 부가통신사업자 허가제의 시작으로 느껴진다.
과기부는 지난 13일 해명에서 데이터센터 장애 사례를 이유로 들었지만 장애는 데이터센터 뿐만 아니라 모든 설비에서 발생할 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서버에도 영화관 티켓발매 서버에도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전국의 수백만 수천만명의 정보전달에 영향을 주는 기간통신사업자나 방송사업자와 같은 수준의 의무를 부과하면 인터넷을 토대로 한 다양한 정치경제적 발전은 불가능해진다. 인터넷은 물리적으로는 컴퓨터들의 연결체일 뿐이지만 민주주의의 양태를 바꿔놓았다.
힘없는 개인들도 막강한 통신수단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이 ‘인류 최초로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구현할 수 있는 매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 것이다. 바로 그 공공성의 쟁취를 위해서는 해서는 안될 규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