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지고 발길에 치이고...언덕만 남은 '원대 토성 성곽'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4-1> 전체의 4% 남은 ‘베이징성곽’

중국 베이징시 하이뎬구에 있는 ‘원대토성공원’의 모습. 표지석 뒤로 허물어진 토성의 흔적이 보인다.

명나라 이전에도 베이징은 중국 지역 정부들의 중심지였다. 첫 기록상으로는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의 수도였다고 하는데 지금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본격적인 베이징 수도 시대는 여진족의 금나라가 열었다. 만주에서 일어난 금나라는 베이징을 부수도로 삼고 ‘중도’라고 불렀다. 현재 베이징시 서남부 융딩허 유역이 당시 금나라 중도 자리라고 한다.

베이징이 통일제국의 본격적인 수도가 된 것은 몽골족 원나라부터다. 원나라는 베이징을 ‘대도’로 부르면서 1267년 궁궐과 성곽을 건설했다. 원나라 시대 대도성은 성곽의 길이가 28.6㎞로, 이후 명나라 베이징성(내성 23.3㎞)보다 더 넓었다. 후에 베이징성은 대도성과 3분의2 이상이 겹치면서 건설됐다.


다행히 대도 시절의 일부 성곽이 베이징시 서북부인 하이뎬구에 남아 있다. 대도 시절의 성곽은 토성이었다. 역사가들은 흙을 다지면서 벽을 만드는 ‘항토판축’ 공법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남아 있는 유적은 베이징의 중심부에서 외곽인데 그만큼 도시개발의 광풍을 피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지역은 현재 베이징 시민들이 즐겨 찾는 ‘원대도성원토성유지공원(元大都城垣土城遺址公園)’으로 꾸며져 있다. 원대토성공원의 길이는 4.2㎞(전체 성곽의 15%)로, 명대성곽공원의 1.5㎞(4%)보다는 길다. 다만 현재의 토성은 나무로 덮인 가운데 대부분 허물어지고 사람들의 발길에 치이는 언덕에 불과하다. 서울의 몽촌토성과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베이징(글·사진)=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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