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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 직후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나는 개인적 야심이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자유화 정책을 지지한다”고 거짓말을 한 뒤 미국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지난 11일(미국 시간) 미국 정부로부터 건네받아 15일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 홈페이지에 공개한 총 43건, 약 140쪽 분량의 기록물에 따르면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1979년 12월14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만나 한국군의 분열로 북한 도발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이에 전 사령관은 “나의 행동은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려는 노력”이라며 “개인적인 야심은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자유화 정책을 지지한다”고 해명했다.
이에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 사령관이 12·12 사태를 사전에 계획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고 본국에 알렸다. 또 전두환은 군부 내 다수인 정승화 지지자가 이후 몇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특히 “전두환과 동료들이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당연히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며 “우리가 앞으로 몇주, 몇 달 간 매우 곤란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보고했다.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개입하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가벼운 형을 내리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전 사령관이 경고하자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의 개입을 강하게 부정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면담 전날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12·12 사태를 ‘젊은 투르크(Young Turks)’ 장교들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사실상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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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전날인 1980년 5월17일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을 완화하고 새 정부 구성 등 정치 일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실장은 최 대통령이 며칠 내에 현 상황에 대한 중대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군부가 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온건적인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라 최 대통령이 계엄령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5·18 당일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면담했다. 이 사령관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우려를 표하며 “이를 통제하지 않을 경우 한국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령관은 또 최규하 대통령이 압력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엄령을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글라이스틴 대사의 면담을 포함한 각종 문서는 90년대 중반에도 이미 공개는 됐으나 상당 부분이 가려진 채였다. 그러다 이번에 처음 전문이 공개됐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