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를 압박해 미국 현지에 공장을 건설하는 등 ‘탈(脫) 중국’ 행보를 보이자 중국이 반격에 나섰다. 중국 자체 파운드리 업체인 SMIC가 설비투자액을 대폭 늘리고 화웨이도 물량을 늘리며 지원사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TSMC는 미국 업체와, SMIC는 자국 업체와 협업을 강화하며 삼성전자(005930)의 파운드리 전략에도 어느 정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MIC는 올 1·4분기 실적 공개 자리에서 “올해 설비투자액(CAPEX)으로 43억달러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전망치 대비 11억달러 늘어난 수치다. SMIC의 1·4분기 매출은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등 각종 어려움 속에서도 자국 팹리스 발주 물량의 안정적 확보로 전년 동기 대비 35% 늘어난 9억500만달러를 기록했다.
SMIC가 현재 주력인 14나노 공정을 7나노 공정으로 ‘퀀텀점프’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수다. SMIC가 올해 말께 7나노 공정의 반도체 양산에 성공할 경우 올해 5나노 공정 제품을 내놓을 TSMC·삼성전자 등 선두업체와의 기술격차가 2년 이내로 좁혀진다. 추가적인 공정 업그레이드를 위해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 등이 미국의 제한을 받을 수 있지만 일부 하이엔드 제품을 제외하고는 7나노 공정만으로도 웬만한 반도체 양산에는 문제가 없다.
업계에서는 SMIC의 이 같은 공격적 투자 배경으로 화웨이의 지원을 꼽는다. SMIC는 글로벌 2위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의 14나노급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린 710A’를 양산하는 등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대만 TSMC에 물량 발주가 어려워진 화웨이가 자국 파운드리 이용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SMIC 측에 호재다. 올 1·4분기 SMIC의 매출에서 중국 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61.6%로 전년 동기 대비 7.7%포인트 늘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SMIC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홍콩 시장에 상장돼 있는 SMIC가 올 초 6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며 자금을 꾸준히 끌어모으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해 매출액(31억1,600만달러)을 훨씬 웃도는 금액을 올해 설비투자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반도체 굴기’를 위해 SMIC의 성장이 꼭 필요하다.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는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2인 3각’ 체제로 돌아가는데 미국이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중국 팹리스 간의 협업에 딴지를 걸고 있어 자국 파운드리 육성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팹리스 분야에서는 세계 정상급인 하이실리콘을 보유한 만큼 SMIC의 기술력도 세계 정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반도체 굴기가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TSMC와 거래가 끊긴 중국 팹리스 물량을 수주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지만 삼성 또한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반사이익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미국 오스틴 현지 파운드리 공장 추가 투자로 TSMC와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