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식(뒷줄 첫번째) 한국가구산업협회장이 15일 서울 구로 협회 사무실에서 이케아의 긴급재난금 사용과 관련한 대책회의를 열고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서경DB
한샘과 현대리바트 등 국내 가구 관련 업체 100여곳이 정부의 재난지원금이 글로벌 공룡 가구 업체인 이케아에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력 촉구하고 나섰다. 이케아 매장은 평균 4만~5만㎡로 대형마트를 정하는 기준인 3,000㎡를 훌쩍 넘지만 유통산업발전법상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사용처를 일일이 정해주다 보니 예상치 못한 허점이 생겨버렸는데 대기업에 해당하는 가구 공룡 이케아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돼버린 게 대표적인 ‘정책 실수’로 지적되고 있다. ★본지 5월15일자 2면 참조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를 놓고 곳곳에서 혼란과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15일 광주 북구청에 마련된 임시 콜센터에서 전담 직원이 쏟아지는 전화 민원에 응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지원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집중적으로 흘러가게 해야 하는데 먹고살 만한 이케아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문제라는 게 가구 업계의 주장이다. 더구나 이케아의 경우 매장의 판매품목 비중이 가구는 4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공산품이 60%나 차지하고 있어 ‘가구전문점’의 지위를 유지해주면서 재난지원금 사용도 가능하게 하고 휴업 등의 영업규제도 빠져나갈 수 있게 방치하는 게 과연 맞느냐는 근본적인 의문도 확산되고 있다.
15일 한국가구산업협회는 서울 구로 가구협회 사무실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정부 재난지원금을 이케아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불허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했다. 가구 업계가 협회 차원에 정부에 촉구성명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9년 설립된 가구협회는 한샘·현대리바트 등 가구산업 관련 업체 100여곳이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여기에 대한가구산업협동조합연합회·한국제품안전협회·한국주택가구조합 등도 성명서 채택에 참여했다. 한샘 부회장인 이영식 협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재난지원금의 사용 목적은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것”이라며 “이 지원금을 대형 업체(이케아)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정부의 행정착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단비와 같다”고 강조했다.
특히 영세 가구 업체가 경영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이 이케아로 급격히 쏠리는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케아가 매장을 낸 광명의 가구 업체를 대표해 참석한 이상봉 경기광명가구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이케아가 광명에 매장을 낸 후 골목상권 내 가구 업체가 43개에서 28개로 줄었고 직접 종사자도 400여명에서 100여명으로 급감했다”며 “코로나19가 터진 이후에는 평균 매출이 40~50% 하락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케아에 재난지원금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게 정상이냐는 것이다. 이범석 에프엠코리아 대표도 “재난지원금이 이케아에서 쓸 수 있게 되면 영세 업체는 지원금 혜택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이케아에서의 재난지원금 사용을 허용한 정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 가구 업계가 장외집회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 입장도 나왔다. 박재식 경기가구클러스터 회장은 “가구 종사자가 얼마나 절박한지 보여주기 위해 집회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케아가 유통산업발전법상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휴업 등 각종 영업규제를 피해가고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이케아 매장은 평균 4만~5만㎡로 대형마트를 정하는 기준인 3,000㎡를 넘지만 국내 진출 초기 매장의 가구 매출이 절대적이라는 이유로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각종 혜택을 받아왔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케아 매장 매출의 60%가 공산품이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케아의 가구전문점 지위를 재조정해야 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 협회장은 “이케아가 유통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문제는 다음 회의 때 논의할 계획”이라며 이케아의 ‘지위’ 논란도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케아 논란에 못지않게 일본 고급 수입차 브랜드인 렉서스 구매 때도 지원금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내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재난지원금 사용을 막으면서 정작 해외 업체, 특히 일본 제품 불매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부 재정이 10조원 넘게 투입된 재난지원금을 일본 기업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요타자동차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 딜러사인 ‘L&T렉서스’는 최근 고객들에게 “서비스센터에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재난지원금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 L&T 렉서스는 차량 판매뿐 아니라 애프터서비스(AS), 부품 판매 등을 담당하는 국내 최대 렉서스 딜러사다. L&T렉서스는 일본 도요타 통상과의 합작사로, 도요타 측이 지분 95%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5%는 L&T렉서스 회장인 이재영씨 몫이다. 다만 렉서스 차량 구입 때는 재난지원금을 쓸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토종 브랜드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보증수리 센터인 ‘블루핸즈’에서는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지만 직영 서비스센터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회사원 강모(37)씨는 “문재인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업체를 돕는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양종곤·한재영 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