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만들어낸 변화들이 부부 사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리를 잡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퇴근 후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일이 줄고 배우자·자녀 등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그렇다고 부부 사이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사소한 집안일 등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갈등 요소가 생길 수 있다.
최근 부부 사이에 오갔던 대화 내용을 생각해 보자. 돈이나 아이들의 교육문제 말고 대화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는가? 대화를 잘 하지 않는 대부분의 부부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가깝다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하거나 비난해 부부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가정폭력으로 응급실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만 들어봐도 짐작할 수 있다.
◇배우자의 말을 경청하고 몸짓·표정·말로 반응하라
행복한 부부 사이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화를 통한 공감대 형성이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공감대가 형성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유지된다. 공감소통을 위한 부부 대화법의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그렇게 느꼈을 때 “나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고 반응해주는 것이다. 배우자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지 말고 집중해서 듣고 몸짓이나 표정으로 반응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인정해준다는 것을 표현한다. 이야기가 끝나면 더 이야기할 것이 없는지 물어보고 상대방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요약해 들려주는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법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지금의 감정·기분이 어떤지를 빨리 파악해 대처해야 하지만 부부 사이에 미세한 감정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 쌓이면 “너만 힘들어?”라는 말이 나오면서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여과 없이 받아주고 이해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감추고 싶은 감정과 모습들이 있다. 부부 대화법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자나 자녀가 느낀 경험세계에 참여하고 들어가려는 노력이다. 배우자가 경험하는 사건·상황이나 걱정을 이해하고 참여해주는 것이다.
모든 대화에서 기본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대화할 때 나와 너의 이야기로 시작하기보다 두 사람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이 열리고 상대방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 오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의 감정에 섬세해져야 한다. 무심코 던진 말로 배우자가 받은 상처는 평생을 갈 수 있다.
좋은 부부 사이를 유지하려면 친밀도와 신뢰를 위해 서로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친밀도가 높은 부부라 할지라도 갈등은 생기기 마련이다. 부부 갈등은 해결되는 방식에 따라 부부 사이에 치명적일 수도,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정석훈 교수
◇갈등상황 속 대화, 말투 조심하고 “나는 …”라고 말하라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중심 문제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내는 처가를 흉보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남편은 아내로부터 존경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겨 논쟁이 이뤄진다면 말투를 조심하는 것이 좋다. 부부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다. 부부 대화의 기본 자세는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말투와 표정이다. 부부 사이에 스스럼 없이 자주 대화하기를 원한다면 평소 자신의 말투와 표정에 관심을 갖고 자신과의 대화가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켜 줘야 한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모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 이때 ‘당신이 나를 매우 화나게 만든다’는 표현보다는 ‘나는 이런 일 때문에 화가 난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1인칭 문장 사용은 갈등 상태에 있는 부부의 분노를 유발하는 행동·상황에 대해 같이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말투·태도·행동 때문에 조금씩 쌓여온 서운함과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채 장시간 얼굴을 맞대다보면 큰 화로 번지기도 한다. 화에는 피해자로서의 억울한 감정과 방어할 수 없는 외부 요인 혹은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실패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분노의 감정이 담겨있다. 화병(火病)은 답답함, 치밀어 오름, 몸이나 얼굴에 열이 나는 느낌을 자주 느끼는 등 뚜렷한 증상이 있다. 지속적인 분노 상태는 우리 몸의 교감신경계를 흥분시키고 심장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병원을 찾아 화병 증상을 치료한다고 근본적 원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는 응어리를 풀고 상대방을 용서해야 비로소 화병 치료가 끝난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