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광주 MBC와 인터뷰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한 인터뷰에서 “5·18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광주MBC 5·18 민주화운동 특별 프로그램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문 대통령의 소회를 담은 이번 인터뷰는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5·18과 관련해 떠오르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그러나 광주를 확장한 그런 분으로서 기억을 하고 싶다”며 노 전 대통령을 꼽았다.
1987년 5월 무렵, 문 대통령은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처참한 광주의 실상을 담은 비디오를 부산 시민들에게 보여줬다. 노 전 대통령은 광주의 진실을 알려 또 다른 민주화 운동인 ‘6월항쟁’의 불씨를 당기는 데 함께한 ‘동지’였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80년대 이후의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면서 “광주를 알게 될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되어서 희생당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던 그 사실에 대해서 큰 부채 의식을 가지게 됐고, 그것이 이제 민주화운동의 하나의 또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처음에는 유인물들을 통해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도 하고, 또 해마다 5·18이 되면 버스를 2대, 3대 전세 내서 민주화운동 하는 분들이 함께 합동으로 5·18 묘역을 참배하기도 하고,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에는 그 당시의 광주의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들, 이른바 광주 비디오라고 부르던, 거의 한 시간 정도 되는 분량이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고 정말로 참혹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누구나 그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그런 말하자면 확실한 증거가 되는 그런 비디오인데, 그 비디오들을 처음에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몇 사람들이 돌려보다가 나중에는 대학의 동아리들, 학생회 이런 차원에서도 돌려보고, 6월항쟁이 일어났던 87년 5월에는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서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5·18 광주 비디오, 말하자면 관람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광주 MBC와 인터뷰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그러면 부산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서 광주 비디오를 보고, 그때 비로소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그런 분들도 많았다”면서 “그런 것이 부산 지역 6월항쟁의 큰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또 부산의 가톨릭센터가 6월항쟁 때 서울의 명동성당처럼 자연스럽게 부산 지역 6월항쟁을 이끄는 그런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을 이끈 당시 광주 시민들에 대해 깊은 죄책감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제가 광주 5·18 소식을 들었을 때 민주화의 아주 중요한 길목에 다시 군이 나와서 군사독재를 연장하려고 한다, 그 사실에 굉장히 비통한 그런 심정이었다”면서 “한편으로 광주 시민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들으면서 굉장히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서울 지역 총학생 회장단의 시위 퇴각 결정에 반대했던 경희대 복학생이었다. 결국 서울 지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사실상 사라지고, 광주 시민이 홀로 계엄군에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술회했다.
문 대통령은 “저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 바깥에 있던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 모두가 이 광주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 그것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부채의식이 그 이후 민주화운동을 더욱 더 확산시키고 촉진시키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당시 광주 오월 영령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우리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