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으로 버텼다…그는 고문 즐기는 얼굴" 경비원이 남긴 비통한 '음성 유서'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 경비원의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주민이 18일 오전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폭행 등 혐의와 관련해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에게 ‘갑질’과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고(故) 최희석씨가 음성 파일 형태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YTN이 공개한 최씨의 생전 음성 유서에 따르면, 최씨는 입주민 A(49)씨에게 상습적 폭행과 협박을 받았다며 A씨의 처벌을 호소했다. 그는 “○○○씨라는 사람에게 맞으며 약으로 버텼다”며 “밥을 굶고, 정신적인 스트레스. 얼마나 불안한지 알아요?”라고 말했다. A씨가 자신에게 한 폭언을 전하기도 했다. 최씨는 “(A씨가) ‘너 이 XX 고소도 하고 돈도 많은가 보다. 그래 이 XX야 끝까지 가보자’, ‘네가 죽던가 내가 죽어야 이 싸움 끝나니까’”라고 협박했다고 했다.

최씨가 극심한 공포를 느낀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있다. 그는 자신이 당한 피해를 설명하며 흐느끼기도 했다. 최씨는 “사직서 안 냈다고 산으로 끌고 가서 (A씨가) ‘너 100대 맞고…’, ‘길에서 보면 죽여버린다’ (라고 말했다)”며 “(A씨는) 고문 즐기는 얼굴이다. 겁나는 얼굴”이라고 울먹였다.

또 최씨는 A씨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씨라는 사람에게 맞은 증거에요. △△△△호 ○○○씨라는 주민에게 엄청나게 맞은 증거”라며 “TV에도 다 나오게 방송 불러서 공개해달라”고 했다. 그는 “71년생 막냇동생 같은 사람이 협박하고, 때리고, 감금시켜 놓고”라며 “○○○씨라는 사람한테 다시 안 당하도록, 경비가 억울한 일 안 당하도록 제발 도와달라.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최씨가 해당 ‘음성 유서’를 남긴 것은 지난 4일로, 당시 최씨는 A씨를 상해 혐의로 고소한 뒤 근무지인 우이동 아파트에서 첫 번째 극단적 선택 하려다 주민들의 만류로 그만 뒀다. 주민들은 최씨를 병원에 입원시켜 안정감을 취하게 했지만, 결국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3일 오후 서울 강북구청 앞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 주민 괴롭힘에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최희석씨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아파트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 시민 등 100여명이 마스크를 쓰고 한 손에 촛불을 들고 고인을 추모했다. /연합뉴스

파일은 모두 3개, 15분 분량으로 알려졌으며 유가족은 음성 파일 2개를 YTN에 제공했고 나머지 1개는 경찰이 핵심 물증으로 보유하고 있다. 최씨는 A씨로부터 “이건 일방폭행이 아닌 쌍방폭행이다”, “다쳤으니 수술비 2,000만원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해당 ‘음성 유서’가 A씨의 주장과 달리 자신이 일방적으로 맞았다는 증거가 되기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찰이 확보한 음성 유서에는 최씨의 코뼈가 부러졌던 날의 상세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강북경찰서는 지난 17일 상해와 폭행 등 혐의를 받는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입주민 A씨를 소환해 조사했다고 이날 밝혔다. 조사는 전날 오후 1시쯤부터 시작해 이날 0시쯤 끝났고 A씨는 귀가했다. 경찰조사에서 A씨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대체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소환이나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입주민 등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최씨는 지난달 21일 주차 문제를 두고 A씨와 다툰 뒤 지속적인 폭행과 폭언을 호소하면서 지난 10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최씨 유가족은 A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발인까지 미뤘지만 끝내 사과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