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코이카 이사장. /사진제공=코이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논란에 대해 여권 인사들이 “윤미향과 정의연을 공격하면 친일”이라며 역공에 나선 가운데 부친의 일본군 헌병 복무 의혹을 시인한 이미경(70)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의 16년 전 고백이 대중들에게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2004년 당시만 해도 이 이사장이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출신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윤 당선자와 친일 논란으로 그의 이력이 재조명된 탓이다.
최근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 이사장이 언론보도에서 정대협 출신으로 거론되자 “이 이사장이 예전 그 이미경 전 의원이 맞느냐”는 물음이 제기됐다. 이 이사장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2004년 아버지의 일본군 헌병 경력을 고백한 사실과 그가 일제 치하에서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정대협 활동가였다는 사실이 그만큼 모순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1990년대 초 정대협 초창기 때부터 홍보위원장과 총무 등 주요 업무를 맡은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부터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에서 중책을 맡으며 여성운동가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이 지난해 1월 서울 마포구 ‘평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의기억연대
이 이사장은 정대협 활동 직후인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권에 투신했다. 이듬해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면서 그의 당적은 한나라당이 됐지만 2000년 자신의 개혁 성향에 맞춰 새천년민주당 창당에 합류했다. 이후에는 서울 은평구갑 지역구를 중심으로 19대 국회의원까지 내리 5선을 했다. 박순천 전 의원, 박근혜 전 대통령,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함께 여성 정치인으로는 최다선 보유자다.
이 이사장의 정치 인생에도 위기는 있었다. 특히 인터넷이 막 발달했던 2000년대 초 ‘부친에게 친일 이력이 있다’는 소문이 온라인 상에서 빠르게 퍼지며 궁지에 몰린 경험이 있다. 그는 결국 2004년 8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일본 현지에서 헌병으로 복무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이 이사장은 당시 “어머니와 경북 경주 고향 어른들 증언을 모았는데 아버지가 일본에서 오래 살았고 차출됐다거나 징발됐다는 등 여러 표현이 나오지만 (일제강점기 때) 헌병을 ‘좀 했다’고 들었다”며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우리 형제들은 인터넷을 통해 처음 알았다”며 “어머니도 결혼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머니가 ‘아버지 성격에 남 해꼬지 할 사람이냐’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고도 했다. 이 이사장의 아버지는 그가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1996년 작고했다.
2015년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위로 행사에서 윤미향(맨 오른쪽) 정대협 상임대표와 이미경(맨 왼쪽)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복동(왼쪽에서 두번째) 할머니와 길원옥(왼쪽에서 세번째) 할머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그의 아버지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헌병 출신은 친일인명사전 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 이사장의 아버지는 계급과 활동이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 점이 참작됐다. 명단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등의 이름이 올랐다.
당시만 해도 이 이사장은 이미 열린우리당의 3선 중진 의원이었던 데다 여성운동가로서의 경력이 더 크게 부각된 상태라 부친의 친일 행적과 정대협 출신을 연결짓는 논란은 불거지지 않았다. 당시 친일 논란으로 직격탄을 맞은 건 아버지가 헌병 오장 출신으로 알려져 열린우리당 의장직에서 사퇴했던 신기남 전 의원이었다. 신 전 의원의 아버지 역시 친일인명사전엔 자료 부족 등 이유로 이름이 빠졌고 그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두 번 연속 위촉돼 활동 중이다.
이 이사장은 당시 “진상규명은 필요하지만 합의된 절차와 법에 따라야 한다”며 “개인이나 특정인의 가족사나 족보를 캐는 방식의 친일 진상 규명은 혼란만 부추긴다”고 우려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연합뉴스
16년간 대중의 뇌리에서 잊혔던 이 이사장의 고백이 되살아난 건 최근 윤 당선자 논란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윤 당선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윤 당선자와 정의연을 공격하는 세력은 친일”이라는 주장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정대협 출신 인사인 이 이사장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 국회 부의장을 노리는 4선 의원,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18일에도 “친일, 반인권, 반평화 목소리를 냈던 이들의 부당한 공세로 굉장히 문제가 있다”며 윤 당선자를 엄호했다.
이 이사장은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여성·가족 정책 입안을 담당했다. 이후 2017년 11월 코이카 이사장에 임명돼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 개발도상국들을 원조하는 코이카 이사장은 대부분 외교관 출신들이 가는 자리였기 때문에 이와 무관한 경력을 가진 이 이사장은 선임 때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을 겪기도 했다.
정의연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지난해 1월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의 서울 마포구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을 방문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갔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