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테러사건 예방을 위해 김포공항 출입국자들에 대한 검문검색 강화 방침이 내려지면서 공항경찰대 대원들이 상황실 폐쇄회로TV를 통해 출입국장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업가 A씨는 최근 집으로 들이닥친 정보 당국자에 체포됐다. 해외에 있는 테러 관련 단체에 자금을 보냈다는 이유다. A씨는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조건으로 풀려났지만 정보당국이 확보한 개인정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보당국은 A씨가 거리를 돌아다니고 해외 바이어와 만나는 모습을 찍은 CCTV 동영상은 물론이고 일 년 동안의 통화기록, 석 달 치 금융거래 내역 등의 방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해외 바이어와 통화하는 내용의 녹음파일까지 가지고 있었다는데 소름이 돋았다.
현재 정보당국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수사를 하면서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위치를 추적하는데 전혀 걸림돌이 없다. 국가정보원 등 대테러 당국이 ‘테러위험인물’로 간주한 인물의 출입국·금융거래·통신정보·개인정보·위치정보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테러 당국이 위험인물로 지목하면 모든 신상 기록이 5분 안에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테러센터 소속 수사관은 추적 시스템을 가동해 위치·통화·금융·출입국 내역 등 각종 자료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게 가능하다. 추적 시스템은 국가의 모든 감시망이 연결돼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방지를 위한 방역시스템보다 훨씬 강력하다. 게다가 언제든 영장 없이 36시간 금융·통신거래 추적에 감청할 수 있고 통보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접목된 첨단 기술로 국민의 24시간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데 국민 들은 정부가 자신을 언제 어떻게 감시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강력한 빅 브러더를 통한 감시 공화국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테러법이 개인정보와 관련된 민감정보를 포함하도록 명시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민감정보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등에 관한 정보다. 정치·사회·종교적 활동 등에 대한 감시·통제까지 가능하다. 테러를 선전·선동하는 글 등도 제재 대상이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 테러를 선동하는 글이나 그림, 상징적 표현 등을 담고 있다고 규정하면 언제든 긴급 삭제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강력한 감시권력을 보유하면서 정보기관의 사찰과 개인정보 수집이 계속해 늘어나고 있다”며 “국가 안보를 위한 감시와 통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국민의 자유가 침해받는 감시공화국으로 전락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대테터 모의상황실에서 직원들이 도로 상황에 대해 CCTV로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등 대테러 당국의 감시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6년 3월 테러방지법이 제정된 이후부터 2019년 5월 말까지 모두 3,214건의 정보 수집 활동을 했다. 연평균 1,000여 건에 달한다. 문제는 정보 조회 건수가 정보를 조회한 사람의 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3,000여건 이상을 조회한 점으로 미뤄 감시 대상이 된 인원의 수도 상당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감청 권한도 한층 강화됐다. 기존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만 감청할 수 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경우’가 감청 사유로 추가돼 더 폭 넓은 감청이 가능해졌다. 이런 이유로 대테러 당국이 감시활동을 하면서 법이 제한한 범위를 넘어서는 부당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나온다. 이에 대해 대테러 당국 관계자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인물에 국한한 제한적인 감시활동”이라며 “감청 대상도 대부분 외국인인데 이는 법원 허가 없이 대통령의 서면 승인만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대테러 방지를 위한 감시체계는 국가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이다. 관건은 국가 감시권력의 자의적 운용을 어떻게 차단하느냐는 문제다. 테러방지법은 테러위험인물의 개념만 정의했지 어떤 절차를 거쳐 특정 인물을 테러위험인물로 지정하는지 등은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관계자는 “현행법은 국정원 등 대테러 당국이 어떤 인물을, 어떤 이유로 테러 위험인물로 봤는지를 다른 기관에서는 원천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며 “자의적으로 테러방지법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