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이번 주 초 세계보건기구(WHO) 총회가 열렸다. 화상회의로 진행된 이번 총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국제적 협력의 장이 됐어야 마땅하지만 미중 대립과 상호비난이 초점이 됐다.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장관은 “한 회원국이 투명성 의무를 지키지 않아 전 세계에 엄청난 희생이 초래됐다”고 중국을 비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성명에서 중국의 압력으로 WHO가 대만의 참석을 막았다고 날을 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진작부터 코로나19를 우한의 연구소에서 유출된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면서 (중국이 끼친 폐해가) 진주만 공습보다 더 나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발원설에 맞서 중국 관리들은 미국 군인이 바이러스를 우한으로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미중의 코로나 힘겨루기는 올해 1월 가까스로 봉합한 무역전쟁으로 옮겨붙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로서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할 수도 있다”며 중국이 합의대로 미국 상품을 사지 않으면 협정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는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 대선 일정에 따라 강도가 세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 경제를 망칠 정도로까지 경제 단절을 하지는 않겠지만 선거 전략상 중국을 교역 대상이라기보다 눌러야 할 적으로 각인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은 1·4분기 -6.8% 성장률의 충격 속에서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정면 승부를 피하려 할 것이며 21일 열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 주석도 2022년 임기 연장을 꾀하고 있으므로 마냥 유화정책을 쓸 수 없고 코로나19로 인해 생산·수송·수요 전 과정이 무너진 지금 애초 미중 협정의 구매 약속을 실현하기 어려워져 미중 전쟁의 뇌관은 열려 있는 상태다.
당장 현안으로 등장한 것이 화웨이에 대한 거래금지다. 미국 정부는 지난주 미국 정보통신(IT) 기술이 화웨이에서 사용되지 못하도록 미국 IT 회사의 자회사 및 거래회사까지 금지조치를 확대했다. 그 결과 대만 TSMC사는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고 미국에 15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애플·퀄컴 등의 중국 내 영업을 제한하겠다고 했는데 미국 IT 기술을 사용하는 한국 회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 어느 쪽 조치든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에는 걸림돌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격화되는 미중 무역전쟁과 공급망 분리에 대응하기 위해 첫째, 중국에 치우친 우리 기업의 생산 네트워크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있는 세계 다국적 기업의 40% 정도가 중국 밖으로 이전을 계획하거나 진행 중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우리 기업도 동남아 이전과 국내 회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공급에서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급 체제로 전환하는 코로나19 이후의 추세에 맞게 목표시장에 대한 직접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다면 미국 또는 멕시코·캐나다에 제품·부품·중간재 생산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미국과 중국 중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점점 더 늘 것으로 전망되는데 우리의 입장을 진솔하게 설명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고 채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외교적 갈등이 증폭된 원인 중 하나도 소통 문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우리의 입지가 좁아지지만 이를 여타 아시아·유럽·중남미 등 지역과의 경협 확대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