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둔 서울 여의도 국회 /연합뉴스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물이 법망을 피해 유통된 ‘n번방 사건’ 후속 대책으로 나온 ‘통신 3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방송통신발전법)’이 뜨거운 감자다. IT업계는 카카오톡, 밴드처럼 각 이용자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사적검열’ 우려가 있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같은 우려를 일축하며 사적인 대화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회는 20일 오전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명 ‘n번방 방지법’인 통신 3법을 의결한다. 법안을 둘러싼 논란을 3가지로 정리했다.
①사적·사전검열 가능성이 있다=충돌을 빚은 ‘n번방 방지법’은 불법 촬영물에 대한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을 삭제하고 접속 차단해 유통 방지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불법 촬영물 유통방지 책임자를 지정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매년 투명성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IT업계는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을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해야 하는 의무’ 때문에 이용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비공개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까지 사전·사적 검열해야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더해 법안의 상당 부분이 대통령령에 위임돼있어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한 삭제요청이 들어왔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으면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어 결국은 신고물이 불법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인터넷사업자 단계에 떠넘겼다고 본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인터넷기업협회·체감규제포럼·코리아스타트업포럼·벤처기업협회 주최로 열린 20대 국회 ‘n번방 방지법’ 졸속처리 중단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성형주기자 2020.05.12
②실효성이 떨어진다=논란이 가중되자 진화에 나선 방통위는 사업자들에게 부여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 대상에 공개되지 않은 대화방이나 사적 대화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조치의 구체적인 예시를 △불법 촬영물 등을 발견한 이용자가 사업자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불법 촬영물 등이 서비스 내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인식하고 이용자가 검색하거나 송수신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 △경고 문구 발송 등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는 국내 포털 사업자인 네이버, 다음 등에서 이미 시행 중인 조치다. 국내 인터넷 플랫폼들은 사용자 신고 기능을 통해 불법 게시물에 대한 신고를 받고, 이에 대해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해왔다. 법망을 피해 텔레그램, 디스코드 같은 해외 플랫폼에서 발생한 n번방 사건의 후속조치로서 효과가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되려 국내 사업자에 대한 규제만 가중되는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③졸속 입법이다=절차를 건너 뛴 짧은 논의기간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4일 발의된 전기통신사업법의 경우 입법예고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조차 생략했다. 통신 3법은 20일 여야가 합의한 마지막 20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일부 내용은 16일 만에 ‘후다닥’ 만들어져 법안에서 법률로 거듭나는 셈이다.
인터넷기업협회는 “각 법률 개정안들은 기업들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활에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 없이 급하게 처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1대 국회로 법안을 넘겨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가운데 통신 3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