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메모워치에 적용되는 심전도 검사료는 이 같은 원격 모니터링 기능이 없는 기존의 홀터 심전계와 동일하다. 의사가 홀터 심전계와 메모워치 중 어느 쪽을 처방해도 검사료가 같다. 측정된 심전도 등 생체신호 데이터, 이를 바탕으로 부정맥 여부를 판단한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서만 건강보험료를 인정한다. 검사료는 처방한 의료기관의 종별(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건당 2만2,000원(환자 본인 부담은 2,000~3,000원) 안팎이다. 원격 모니터링이 가능한 메모워치의 장점은 무시됐다.
기존의 심전도 측정방식(왼쪽)과 원격 모니터링이 가능한 심전도 측정 방식(오른쪽).
◇손에 차는 심전계 건보 적용은 ‘절반의 성공’
심전도 데이터를 전송하고 원격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 전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은 이번 결정에서 빠졌다. 이 의료기기가 그동안 민감한 원격의료와 결부돼 거론된데다 건강보험당국이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운영비 등에 대해 건강보험 수가(의료서비스 가격)를 어떻게 적용할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메모워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결정은 관련 업계와 의료계 입장에서는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건강보험당국은 또 ㈜메쥬의 패치형 심전계 ‘하이카디’를 활용한 ‘심전도 감시, 침상 감시’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결정했다. 패치형 제품 중에서는 처음인데, 500원짜리 동전 크기에 무게가 8g에 불과하다. 9종류의 부정맥을 검출할 수 있고 측정된 데이터는 모바일 앱이나 PC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저장·공유할 수 있다. 에이티센스의 패치형 심전계 ‘에이티패치’도 보험 등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맥은 대개 발작성 증상으로 나타났다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그래서 증상이 있을 때 바로 병원에 가서 정확하게 심전도 검사를 받지 않으면 진단이 어려웠다. 기존의 홀터 심전계는 대당 500만~2,000만원가량 하는데 분석 소프트웨어(SW)가 탑재된 워크스테이션을 함께 구매해야 하므로 실제로는 1억원이 넘는다. 동네 병·의원이 갖추기 어렵다. 입원해서 보통 24시간, 길게는 48시간 측정하는데 그동안 환자에게 부정맥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헛수고가 된다. 손호성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기존 부정맥 환자들은 두근거리는 증상을 느꼈을 때 24시간 심전도 검사를 위해 4~5회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메모워치는 손목에 차고 생활하다가 심장에 이상이 왔다고 느끼는 순간 센서 부분에 손가락을 대면 된다. 부정맥 조기 진단율을 0.9%에서 11%까지 끌어올려 연간 4,000억원의 의료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휴이노는 추정하고 있다. 저위험 부정맥 환자는 당뇨병·고혈압처럼 동네 병·의원에서 진단·처방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동네 병·의원서 부정맥 환자 진료 늘어날 것
원격 모니터링 의료기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자이지만 입원할 음압격리병실이 부족해 생활치료센터에서 지낸 환자 등의 경우 갑자기 중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 그래서 생체신호 모니터링이 중요한데 측정한 데이터를 서버의 모니터링 시스템에 자동 전송하는 기능이 있어야 수십~수백명 이상의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자동 원격 전송 기능이 없으면 생활치료센터처럼 의료인의 감염 위험을 덜기 위해 환자들에게 생체신호를 측정하는 의료기기를 나눠주고 측정 데이터를 손으로 적어 제출하게 하거나 휴대폰 문자메시지·앱을 통해 모아서 관리해야 한다. 의료진의 별도 입력 절차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메모워치 같은 측정 데이터 자동 전송 기능이 있는 의료기기, 자동 원격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해주는 의료기기가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런 기능을 갖춘 메모워치 같은 의료기기가 잇따라 등장하고 측정한 생체신호 등을 자동 전송하고 진단에 활용되려면 이런 생태계·시스템 전반을 아우르는 건강보험 정책 결정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예측 가능해야 기업들이 뛰어들기 때문이다. 원격 모니터링 의료기기는 이런 측면에서 원격의료 논란과 분리시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원격의료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원격의료와 무관하게 정확하고 체계적인 환자 모니터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원격 모니터링을 원격의료와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원격의료는 원격 진단·처방을 동반한다. 원격 모니터링은 이와 달리 환자의 생체신호를 파악해 질환의 정도와 변화를 살피는 것이다. 원격의료와 무관하게 얼마든지 대면진료에 활용해 진료 품질을 높일 수 있다. 건강보험당국도 메모워치가 전송한 데이터에 ‘이상’ 현상이 나타날 경우 의사가 ‘부정맥이 의심되니 내원해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원격의료에 대한 논란을 떠나 이런 성격의 ‘원격 모니터링 의료기기’를 ‘스마트 모니터링 의료기기’로 용어를 바꿔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는 것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휴이노의 ‘메모워치’(왼쪼)로 측정한 심전도 데이터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은 메쥬의 패치형 심전계 ‘하이카디’.
◇당국 “의사가 못하던 걸 해내는 AI SW에 수가 가산”
길영준 휴이노 대표는 “메모워치는 원격 의료기기가 아니라 의사들의 진료를 돕는 스마트 모니터링 기기”라며 “원격 모니터링을 만성질환 진료의 보조수단으로 생각하고 활용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재원 에임메드 대표는 “논란이 되는 원격의료는 차후 도입하더라도 원격 모니터링은 환자를 위해 속히 허용돼야 한다”며 “이러다가 미국·일본 등에서 쓰이는 원격 의료기기에 의존해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문제는 스마트 모니터링 의료기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검진 때 찍은 X선 영상으로 폐암·유방암 등에 걸렸는지를 의사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AI SW)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다.
이중규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AI SW들이 영상의학과 의사 등이 못하던 것을 새롭게 해내는 게 아니고 능률을 높여주는 보조적 수단 정도에 그친다면 건강보험 가산수가를 얹어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며 “기존에 못하던 것을 할 수 있게 해줘야 수가를 더 얹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한 건강보험당국자는 “이런 유형의 AI SW에 대해 의료기관이 구입해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거나 영상의학과 의사를 증원하지 않고 더 많은 환자를 검진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구입해서 쓸 것이고 SW 개발 기업은 이를 통해 매출을 올리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정해진 건강보험 수가(영상판독료)를 의료기관과 SW 개발 기업이 공유하는 것도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대한영상의학회는 지난해 ‘AI 기반 의료기술(영상의학 분야) 급여 여부 평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AI SW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와 비교해 의사의 판독·진료시간만 줄여줄 경우에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의미 있는 진단 향상 때는 적용 검토 △환자의 치료 결과가 궁극적으로 좋아지거나 비용 효과성을 입증할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게 골자다. /jaelim@sedaily.com
◇‘메모워치’가 측정하는 부정맥이란
호흡곤란·심장마비 등 초래…진단·치료 빠를수록 생존확률 높아
심장은 하나의 리듬을 가지고 끊임없이 뛰는데 전기 전달 체계에 변화·이상이 오면 정상 리듬이 깨진다. 이를 부정맥이라고 하는데 심장의 혈액배출 기능을 떨어뜨려 호흡곤란·어지럼증 등이 나타나며 심장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부정맥 가운데 심방의 여러 부위가 무질서하게, 그리고 아주 빠르게(분당 300~600회) 뛰는 심방세동이 가장 위험하다. 심방세동은 심장 기능이 저하되는 심부전을 초래하며 뇌졸중 위험이 4배 높아진다. 심방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하고 가늘게 떨어 심장 안에 혈전이 잘 생기는데 이게 떨어져 나가면 뇌혈관 등을 막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맥 증상이 심하거나 자주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 가야 한다. 진단과 치료를 빨리 받을수록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 심각한 정도에 따라 비정상적인 심장 전기신호가 만들어지는 부위를 전기충격이나 고주파 열로 없애거나(전극도자절제술) 심박동기와 제세동기(ICD) 삽입 또는 흉강경 수술 등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