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의 사과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부가 “5·24 대북제재 조치의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어난 가운데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놓아 그 의미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통일부 역시 5·24 조치 폐기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면서 “5·24 조치가 남북 교류협력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만 내놓아 정부가 사실상 5·24 조치를 무시하는 전략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조치에 대해 유지·폐기를 검토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 앞 주차장에서 열린 대한적십자사 헌혈 행사장에서 “5·24 조치 폐기를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느냐”고 답했다. 이후 대다수 언론은 이 발언을 “5·24 조치 폐기를 검토한 것은 아니다”라며 김 장관이 선을 그은 취지로 풀이하고 보도했다.
전날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 발언의 맥락을 고려하면 이 같은 해석이 가장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여 대변인은 앞선 20일 “5·24조치는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유연화와 예외조치를 거쳐왔다”며 “사실상 그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오후 통일부는 관련 언론 보도들에 대해 “김 장관이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나’라고 답변한 것은 ‘5·24 조치의 폐기 여부와 관련된 답변은 아니다’라는 점을 참고하라”고 기자단에 알렸다. 그러면서 김 장관 발언의 속뜻은 따로 풀어서 제시하지 않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날 김 장관의 발언을 ‘5·24 대북제재 조치의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정부 입장을 5·24 조치 폐기 선언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이해하면 잘못된 일이었다. 5·24 조치 폐기 검토 여부를 물었는데 다른 대답을 했다는 것이었다. 통일부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질답의 맥락을 고려할 때 김 장관은 사실상 동문서답을 한 격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분향하던 중 “천안함 폭침은 누구의 소행이냐”는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통일부 당국자는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5·24 조치는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실효성이 상실됐고 남북 교류협력과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 구축을 위한 노력에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해명했다.
김 장관과 통일부 당국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현 정부의 입장은 앞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 시절의 5·24 조치는 굳이 폐기 여부를 검토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김 장관은 5·24 조치 ‘폐기’에 대한 언급 자체를 불편해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의미만 받아들이고 “폐기란 개념에 연결시키지 마라”는 뜻으로 발언했을 가능성이 있다.
5·24 조치는 천안함 폭침 직후인 지난 2010년 5월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독자적 대북제재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 중단 조치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개성공단과 금강산 제외 방북 불허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대북지원 사업 보류 등을 골자로 한다. 오는 24일은 조치 10주년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